"참 힘들다. 주로 시장을 돌아다니며 유세하고 있는데 유세차도 못 대게 한다. 장사하는 데 가로막지 말아 달라고 한다. 때로는 다가와 '여가 어데라꼬 문재인이를 떠드노'라고 욕하시는 분도 있다. 하도 많이 겪어봐서 이제 굳은살이 박였다."


더불어민주당 대구경북 유일한 지역구 의원인 김부겸 의원이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더민주당 의원이 대구에서 문재인 선거유세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일인지 단박에 알 수 있는 글입니다. 하지만 그는 "힘내겠다. '나라를 나라답게' 구호가 나온 걸 보고 내 생각이 바로 그거다 싶었다"며 "문 후보가 대구에 와서 '대구 대통령, 광주 대통령 하지 않겠다'고 그랬는데, 그분들이 내는 화와 퍼붓는 욕, 왠지 마음이 안 간다는 거리감을 다 떠안아 대한민국 전체와 국민 모두를 보듬는 대통령 시대를 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글을 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2일 "동지가 올린 페이스북 글이 아프다. '참 힘듭니다'는 첫 마디에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너무 미안하고 짠하다"는 화답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김부겸 의원, 오늘만큼은 동지라고 부르고 싶다"며 "김부겸 동지가 쌓아온 아픔을 딛고 일어서겠다. 꼭 지역통합·국민통합·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며 국민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문재인은  "김대중이 평생을 걸어온 길이고 노무현이 벽을 깨기 위해 부딪쳐 온 길로, 이제 두 분을 대신해 김부겸 동지가 그 길을 걷고 있다"며 "지역감정의 견고한 성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동지의 눈물, 욕먹고 손가락질받아 헐어버린 마음의 상처 덕분"이라며 김부겸이 김대중과 노무현을 잇는 다고 추켜세웠습니다.

그는 "동지는 굳은살이 박여 괜찮다고 말하지만 단단하게 여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픔이 쌓였겠느냐"며 "힘들지만 외롭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 이 땅에 김부겸 동지를 지지하는 수많은 동지가 함께하고 있다"며 따뜻한 위로를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함께하겠다. 김부겸이 문재인의 동지가 아니라 문재인이 김부겸의 동지"라고 말해 노무현 대통령이 문재인에게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문재인과 김부겸 힘내시라!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7주기 추도식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엄수됐습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진정한 국민의 승리를 위해서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이어가야 하고, 그 핵심은 단합과 통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노무현이 피운 꽃은 김대중이 뿌린 씨앗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노무현이 이루고자 했던 사람사는 세장은 김대중이 꿈꾼 나라를 완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우리가 반목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추도사 전문


 이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통합’입니다

찬 겨울 북풍한설이 매서울 때면 더딘 봄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해마다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와서 세상의 모든 생명을 일깨웁니다.

 대통령께서 가신 지 어언 7년, 오늘 이 서럽도록 찬란한 계절에,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기억하려 여기 모였습니다.

 민주정부 10년이 지나고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벌판에 놓였습니다.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경제, 국가의 위상, 평화통일의 길이 모두 낭떠러지에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지난 총선을 통해 직접 불의한 시대를 바꾸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선거 전에는 모두가 야권의 대참패를 얘기했습니다. 야권의 붕괴는 기정사실이었고, 집권당이 개헌선을 넘느냐 마느냐가 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가히 혁명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집권당을 소수정당의 위치로 끌어내리고 여소야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야권에게 거대한 힘을 모아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들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우리에게 바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하나된 힘으로 불의한 시대를 끝장내고 민주와 평화와 복지의 새 시대를 여는 것입니다.

 생전에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추락하고 서민경제가 파탄나고, 평화통일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언젠가는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두 분이 직접 나서야만 할 때가 오리라고 예감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두 분 대통령이 함께, 쓰러져가는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에 앞장서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서거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목놓아 통곡하면서 ‘내 몸의 절반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애통해 하신 이유입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려던 두 대통령의 뜻을 우리가 제대로 이어받고 있는가 돌이켜봅시다.

 두 대통령을 잇겠다면서 서로 갈등하는 지금, 우리들이 그 뜻을 이어갈 수 있겠는가. 반목하고 갈등했어야 했는가.

 우리 국민들은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심정으로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만약 봉건시대였다면, 낫과 죽창을 들고 일어나 들불로 타올랐던 민란을 일으키는 심정으로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국민들은 이제 다시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서민의 삶을 벼랑에서 끌어올리고, 남북이 대화하고 교류하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만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 지방자치제 실현을 위해 노구의 몸으로 단식투쟁까지 벌인 김대중 대통령은 ‘지금 지방선거를 치르면 야당에 불리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당이 설령 지방선거에 참패하더라도 지방자치제를 실현해야 한다. 시장 군수 구청장 대부분을 여당이 차지할지라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보다는 선거로 뽑힌 사람들이 훨씬 낫다. 당장의 유불리로 판단하지 말라. 세월이 걸릴지라도 지자제의 바탕 없이는 평화적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

 2002년 대통령 선거전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율의 부침을 겪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선거 지원을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거래를 해서 해야 하는 대통령이라면 나는 하지 않겠습니다. 지더라도 당당하게 임하는 것으로 정치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정치인 김대중의 목표가 특정지역과 특정인맥의 집권에 있지 않았던 것처럼, 노무현의 꿈과 목표 또한 특정세력과 정당의 영달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두 분의 뜻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번 총선의 결과를 승리라고 평가하고 자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한 뜻을 이어받는 일을 편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습니까.

 2008년 김대중 대통령은 “80%를 내주고라도 통합하라”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늘상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이 평생의 목표이며, 그 꿈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국민의 승리를 위해서 우리는 이 뜻을 이어가야 합니다. 핵심은 단합과 통합입니다.

 지금까지 나의 아집이 나의 말이, 나의 행동이, 단합을 해치고 갈등을 가져오지 않았나 자성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은 하나된 힘으로 두 번의 민주정부를 만들어냈습니다.

 민주정부 10년간 민주주의는 진전되었고, 국민의 삶이 희망을 갖게 되었고, 민족상생의 꿈이 구체화되었습니다.

 김대중이 연 인권과 민주주의의 길을 노무현이 더욱 튼튼히 닦았습니다.

 외환위기를 극복해낸 김대중의 리더십을 이어 노무현은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경제체질을 만들었습니다.

 김대중이 열어젖힌 남북화해의 문을 노무현이 실질적 평화와 공동번영의 틀로 구체화했습니다.

 노무현은 생산적 복지의 길을 제시한 김대중을 이어 시민복지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노무현은 지역주의 타파와 국가균형발전의 실현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 건설로, 소모적 권력다툼이 국가발전의 역량을 갉아먹는 악순환 타파로, 더욱 발전된 길을 가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책무가 역사를 진전시키는 것이라면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하나로 이해해야 합니다. 통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맙시다.

 노무현이 피운 꽃은 김대중이 뿌린 씨앗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노무현이 이루고자 했던 사람사는 세상은 김대중이 꿈꾼 나라를 완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반목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목한다면 뜻을 잇는 것이 아닙니다.

 노 대통령이 남긴 말씀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지난 탄핵을 이기고, 2004년 5·18 기념식에서 한 연설입니다.

“5·18은 과거 군사독재 정권들이 장기집권을 위해서 호남을 따돌리고 국민을 지역으로 가르고 이간질해서 분열시켰던 반역적 범죄행위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분열을 극복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지난 총선을 통해서 이러한 분열구도가 약간은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정치의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이 새로운 희망의 싹을 반드시 살려 나가야 합니다.

 5·18을 통해 광주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진실을 말하는 용기’, ‘소신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명실상부한 통합의 길로 나아갑시다.

 그 통합된 힘으로 성숙한 민주주의 시대를 열고, 마침내 민족이 하나가 되고 평화와 번영이 함께하는 동북아 시대를 앞장서서 열어갑시다.”

 이 인용으로써 저의 추도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7주기를 맞아, 머리 숙여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한 뜻을 이으려는 우리의 겸허한 노력이 있는 한, 그는 항상 우리의 동지로서, 향도로서, 수호신으로서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 5. 23.

 대한민국 17대 국회의장 김원기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김종대 국방개혁단장 <프레시안>


김대중-노무현 정부 통일참모들이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 나선 김종대 국방개혁단장을 지지했습니다. <프레시안>은 김 단장은 29일 보도자료를 내어 "비례대표 후보 출마 선언을 한 직후 임동원·이종석 두 전직 통일부 장관과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응원 메시지를 보내 왔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김 단장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장과 통일부장관을 지낸 임 전 장관은 "김 단장은 탁월한 통일·외교·안보 전문가인 동시에 준비된 정치인"이라며 "한반도 평화 공존의 새 역사를 만드는데 전략가인 김 단장은 꼭 필요한 인물이다. 정의당 당원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비례대표를 뽑는 정의당 유권자들에게 김종대 후보를 뽑아달라고 호소한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 통일부장관은 이 전 장관은 "쉬운 길 놔두고 정의당을 택해 어렵지만 새로운 도전에 나서셨는데 이번에 꼭 국회 진출하시기를 기원한다"며 "김 단장이 국회에 진출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안보가 참 변혁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라며 힘을 보탰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기구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을 지낸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김 단장이야말로 정의당의 보배이다. 그런 인물을 국회로 보내야 우리 정치가 산다"고 호소하면서 "김 단장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방 개혁을 이끌 인재"라고 높이샀습니다.


김 단장은 지난 달 18일 <프레시안>과 팟캐스트 <시사통 김종배입니다>가 공동 주관한 '정치통' 방송에서 "저는 보수의 앞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최초의 진보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안보하면 보수가 아니라 진보도 안보를 책임질 수 있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김종대 단장은 또 "정의당 지지층이 보기에 (군사·안보 분야는) 우리 쪽의 일인 여성·환경·경제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를 못살게 굴고 우리가 견제할 수 없는 보수의 심장부 앞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사람 한 명의 스토리를 드리고 싶다"면서 "제가 당에 가서 스스로 규정한 제 역할은 군대로 따지면 '폭발물 처리반, 지뢰 제거반'이다. 그걸 잘해야 여러분이 진보 정치를 편하게 잘한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김종대 단장이 정의당원들 선택을 넘어 국회에 입성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다음은 김 단장의 출마 선언문 전문(全文).

국민 여러분, 존경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에 출마한 김종대입니다.

지금도 국회에서는 기나긴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저의 지나간 기억 하나가 떠오릅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행정관으로 근무할 당시, 제가 작성한 기무사 개혁안, 군 인사 개혁방안이 저장된 컴퓨터의 본체가 감쪽같이 사라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행정관으로 부임한 뒤 알게 된 더 충격적인 사실은 제가 그동안 기무사로부터 영장도 없이 감청을 당해 왔다는 것입니다. 국방 전문 언론사를 운영했던 시절에도 저와 회사의 이메일이 모두 기무사에게 감청당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당해 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압니다. 인권을 보호할 장치가 부실한 상황에서 정보기관에 막강한 권한을 주면 반드시 악용할 것입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테러 방지법은 언제든 우리를 훔쳐보는 몰래카메라가 될 뿐만 아니라 국민을 길들일 몽둥이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안보는'가짜 안보'입니다.

보수정권은 항상 북풍으로, 종북몰이 색깔론으로, 테러의 위협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괴롭혀 왔습니다. 그들이 안보를 강조하면 도리어 한반도 안보는 더 위험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들은 실패한 안보의 결과에 책임지지 않고 원인을 야당에 전가했습니다.

김종대가 박근혜 대통령의 '가짜 안보'와 단호히 맞서 싸우겠습니다. 그것이 김종대의 숙명이자,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는 이유입니다.

김종대의 국방·안보경력은 25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주국방론에는 저의 손때가 묻어 있고, DMZ 지뢰 폭발로 인해 다리를 잃은 곽 중사 사고를 계기로 개정된 소위 '곽중사 법'도 김종대가 아니었으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보수의 안마당'이 된 국방·안보를 '시민의 광장'으로 바꿔 놓겠습니다. 가짜 안보의 지뢰를 걷어내면 민주주의와 민생, 노동과 복지가 더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저 김종대는 1호 법안으로 '군피아 방지법'을 발의할 것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안보는 애국심을 말할 자격조차 없는, 후안무치한 '무면허 안보'입니다. 병역의 의무를 면탈했으면서도 국가 안보의 고위직에 자리를 틀고 앉은 자들은 다름 아닌 '내부자들'입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에 의한 패권적 국방 체제에서 주권자인 시민이 통제하는 국방은 불가능합니다. '군피아 방지법'은 군 출신이 국방부 장관으로 진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 청년당원 동지 여러분! 군 입대를 앞둔 아들을 두고 있는 당원 동지 여러분!

이제 노동의 눈으로도 안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국방정책은 청년정책과 고용정책과도 융합되어야 합니다. 고졸 청년이 군대에 가려면 평균 24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21개월 동안 군 복무를 한 뒤에도 평균 취업 대기 기간이 1년이나 됩니다. 결국 군 복무 21개월을 위해, 취업까지 3년이라는 피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김종대는 군 복무로 인해 소중한 청춘의 시간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군 입대 연령을 만 18세에서 1년 더 낮추고, 재학 당시부터 희망하는 군부대를 선택하는 '군입대 예약제도'를 도입하겠습니다. 이러한 정책이 도입되면 우리나라 청년의 사회진출을 2년 이상 앞당길 수 있습니다. '끌려가는 군대'가 아닌 '청년이 선택하는 군대'가 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당원 동지 여러분!

저는 조직도 없고 기반도 약합니다. 진보 정치에도 한발 늦게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그러나 김종대를 선택하면 정의당은 보다 강해지고 보다 넓어집니다. 당원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김홍걸과 김현철

정치 2016.02.01 07:00 Posted by 耽讀

 

"아버지의 정신이 훼손되고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아버지 이름을 팔고 다니고 있다. 제가 보기에는 '저 사람이 호남 출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여권 보수 세력에 가 있을 텐데' 하는 성향의 사람까지도 아버지 이름을 들먹이고 하니까…. 아버지의 정신, 통합과 화합의 정신이 훼손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점을 많이 우려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3남 김홍걸씨가 지난 달 28일 <한겨레>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물론 부족한 점이 많고 지지해 주셨던 유권자들을 실망시킨 부분도 많은 것을 안다. 회초리를 맞아야 되는 부분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래도 민주 개혁 세력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은 거기밖에 없다고 봤다"면서 "무너진 집이라도 다시 세워서 살 곳을 만들어야지, 조금 헐었다고 그래서 때려 부술 순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더불어 민주당을 살리는데 작은 일이라도 하겠다는 말입니다.


고 김영삼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가 30일 트위터를 통해 "아직 산소에 떼도 입히지 않았는데 정치적 아들이라는 사람이 아버님의 무덤에 침을 뱉고 있다. 누군가 배신의 정치라고 했던가?"며 김무성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현철씨는 특히는 "막강한 권력으로 자신에게 대든 (유승민) 원내대표를 유신의 추억처럼 단칼에 날렸다"며 "분연히 일어나 이 무도한 권력자들을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직격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을 심판을 촉구한 것입니다.


김홍걸과 김현철,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김대중과 김영삼 아들입니다.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들이 나섰습니다. 우리 정치사에서 아버지를 이어 정치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아버지 지역구에 아들이 배지를 단 이들이 있습니다. 딸은 대통령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홍걸씨와 현철씨가 정치에 나서고, 정치 발언을 하는 것이 낯선 것은 아닙니다. 물론 두 사람은 뒷돈 때문에 감옥까지 간 사람이라 도덕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것을 좋게 안 보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독재자 딸이 당당하게 민주공화국 대통령이 되어 민주주의를 망쳐버리는 대한민국입니다.


도덕성에 흠결은 있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아버지 정신을 이어받고, 통렬한 자기 반성이 있다면 한 번쯤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박근혜정권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렸고, 남북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었고, 헬조선은 젊은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 조차 생각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도 배부른 자들을 위한 정책을 쏟아냅니다. 재벌과 가진 자들을 위한 목소리를 높일 뿐입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정치는 1급수가 아닙니다. 완벽한 도덕주의자는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선거는 최선이 아니라 가장 나쁜 놈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정치 행위입니다. 김홍걸 씨와 김현실 씨가 직접 정치에 뛰어들 수 도 있지만, 발언과 글을 통해서라도 박근혜정권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민주개혁세력 승리를 위해 힘을 쏟는다면 그들의 등장을 막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YS, 박정희 독재 몰락을 재촉하다

정치 2015.11.24 07:00 Posted by 耽讀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연설하는 통일 민주당 김영삼 후보 <경향신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분명하다. '민주화 거목',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했다는 이라는 평가를 하는 이가 있는 반면, '3당야합, 'IMF'를 불러왔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경찰국가','병영국가'로 만들었던 독재자 박정희 몰락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중 하나가 'YH사건'이다.

YH 무역회사는 가발수출업체였다. 1970년대 초 가발은 우리나라 효자 수출품목이었다. YH무역은 1970년 직원이 4000명에 달했고, 한 때  수출 순위 15위에 올랐다. 하지만 가발은 이내 사양업이 되고, 경영진은 외화를 국외로 도피했다.

 

박정희, YH무역 노조원 강제 진압 위해 신민당사에 공권력 투입

 

경영진은 결국 1979년 3월 30일 회사를 폐업했다. YH무역 노동자들은 "폐업공고의 철회"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 해 8월 9일 'YH무역' 여공 187명이 신민당사를 점거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은 지난 2013년 8월 30일 <한겨레>[길을 찾아서] 'YH노조 신민당사 농성장에 진압작전' 제목 글에서 "'정상화가 아니면 죽음이다'라고 쓴 머리띠를 두른 조합원들은 준비해 간 펼침막을 들고 농성에 들어갔다. '우리에게 나가라면 어디로 나가란 말이냐', '배고파 못 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말했다.

 

눈길을 끈 것은 당시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이 이들을 적극 보호했다는 것이다. 이총각에 따르면 김영삼은 "6명의 와이에이치 노조 대표와 먼저 만난 뒤 4층 농성장을 직접 찾아가 조합원들을 격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들을 무력 진압했다. 이틀 뒤인 11일 새벽 2시, 정사복 경찰 등 1200여 명이 서울 마포구 신민당사에 투입됐다. 경찰은 YH무역 여공 187명을 곤봉·벽돌·쇠파이프 따위를 동원해 폭력진압했다. 여성 근로자 10여명, 신민당원 30여명, 취재기자 12명이 부상을 입었고, 여성 노동자 김경숙씨가 떨어져 숨졌다. 경찰은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추락사라고 밝혔다. 이총각 노조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겨우 눈을 붙이고 깜빡 잠이 들었던 농성 노동자들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깨어나, 불시에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맞고 차이면서 비명을 질렀다. 당황한 일부 노동자들은 주먹으로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려고 했고 사이다병을 깨들고 저항해봤지만 경찰의 폭력적 제압에 모두 당사 밖으로 끌려나왔다. 김영삼 총재 이외 국회의원들과 당원들 역시 무차별적 폭력에 실신 상태가 되었고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끌려나갔다. 기자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코뼈에 금이 가도록 두들겨 맞고 사진기와 필름까지 뺏겨야 했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_-2013.09.02 <한겨레> [길을 찾아서] '끌려나온 노동자들 퇴직금 강제 수령'

 

'YH사건'을 본 이총각 위원장은 "결국 정권의 야만적인 폭력은 또 하나의 민주노조를 쓰러뜨리고, 아직 청춘을 활짝 펴보지도 못한 여성 노동자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면서 "총각은 이 인면수심의 정권이 오래가지 못 할 것이라는 확신에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고 말했다.

 

야당 당사 공권력 투입....박정희 정권 몰락 불러

 

 

 

YH노조원들과 끌려 나오는 김영삼

 

이는 현실이 됐다. 이후 독재자 박정희는 김영삼을 제명했고, YH노조를 폭력진압한지 두 달만인 그해 10월 26일 부하인 김재규에 총에 맞고 죽었다. 민주노총 사무실에 경찰을 투입한 것과 관련해, 'YH사건'을 누리꾼들이 떠올린 이유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당시 김영삼이 보인 행동이다. 사실 YH무역은 중소기업이다. 신민당이 당 운명을 걸만큼 노조원들을 지켜주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김영삼은 이 사건이 박정희정권 운명을 가름할 수 있는 중대사건임을 알았다. 김영삼은 당사를 점거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산업발전의 역군이며 애국자인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경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신민당사를 찾아 준 것을 눈물겹게 생각합니다. 신민당은 억울하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2013.08.19 <동아일보> '불통' 박정희 정권, 신민당사 농성 YH여공들 강제진압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2000년)에는 "사실 당시 신민당의 처지로서는 당사를 농성장소로 내준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면서 "하지만 나는 이 불쌍한 여공들을 내몰면 더이상 갈 데가 없고 극단적인 사태도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내가 보호해 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2013년 4월 20일 <한겨레> '이철승의 신민당사? 농성하러 가지도 않았으리'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잠자리에 들자 김영삼은 당사 정문으로 내려가 '여공들이 흥분하니 모두 물러나라'고 요구했다"면서 "경찰들이 이에 응하지 않아 실랑이를 벌이던 김영삼은 '너희들이 정말 저 여공들을 뛰어내리도록 할 참이냐'며 마포서 정보과장의 따귀를 때리기도 했다"고 했다.

 

김대중과 노무현만큼 몰라도, 현 야당 의원들이 김영삼 역할은 해야 한다. 박근혜정권은 이미 민주공화정을 부정하는 정권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저항해야 한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결기를 보인 김영삼 정도는 해야 민주주의 신봉자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YS어록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정치 2015.11.23 07:00 Posted by 耽讀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연설하는 통일 민주당 김영삼 후보 <경향신문>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습니다. 한몸에 한국 현대정치사 영욕을 고스란히 간직했습니다. 한국 민주화 투쟁 상징이었지만 노태우-김종필과 3당합당은 권위주의 세력과 손 잡는 변절이었습니다. 문민정부를 탄생시켜 독재자 박정희 이후 군부 독재정권 종말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임기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은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지지율을 받기게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는 시사평론 김용민 씨 말처럼 "이명박과 박근혜 씨는 지금까지의 행적 아니 행각으로는 죽어서 대접받기 힘들 겁니다. 덕을 끼칠 수는 있겠네요. 쌀 소비와 방앗간 매출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은 두 인간에 비하면 위인이자 영웅"입니다. 그가 남긴 어록들입니다. 김대중-노무현 때보다는 덜 하지만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 그를 생각하니 마음 한 켠 아픕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그 신문이 장 총리의 마음에 안 맞는다는 이유로 탄압했다면 장 총리는 과거 이 정권에 의해서 경향신문이 폐간당하던 때를 상기하라”

(1961년 3월, 장면 정부의 민족일보 인쇄중지를 비판하며)

“김대중씨의 승리는 우리들의 승리이며 곧 나의 승리이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김대중 씨를 앞세우고 전국을 누빌 것을 약속한다.”

(1970년 9월 29일, 신민당 대선 후보 경선 패배 직후)

“한국에는 통치가 있을 뿐이고 정치가 없다. 정치가 없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

(1973년 9월 24일, 국회 대정부질문, 김대중 납치 사건 진상규명 촉구하며)

“역사의 진로를 민주회복으로 바꾸어야 할 시점이 지금이라고 확신하며, 정부는 이제 안보를 빙자해서 억압정치를 할 명분이 없으며, 오히려 안보를 위해서 민주회복을 해야 할 시점에 섰다.”

(1978년 7월 23일, 국회 연설)

“대도무문(大道無門), 정직하게 나가면 문은 열립니다. 권모술수나 속임수가 잠시 통할지는 몰라도 결국은 정직이 이깁니다.”

(1979년 6월 4일, 동아일보 인터뷰. 5·30 신민당 총재 재선 직후)

“이 암흑적인 정치, 살인정치를 감행하는 이 정권은 필연코 머지 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무참히 쓰러질 것이다 하는 것을 예언해 주는 것입니다.”

(1979년 8월 11일, YH무역 여공 신민당사 농성 강제진압 항의 기자회견)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

“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살 길을 선택할 것”

(1979년 10월 4일, 헌정사상 첫 의원직 제명 뒤)

“나를 해외로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를 시체로 만든 뒤에 해외로 부치면 된다.”

(1983년 5월 29일, 광주민주화운동 3주기 단식농성 후 입원)

“군정을 학실히(확실히) 종식시키겠습니다.”

(1987년 대선 유세에서)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

(1993년, 하나회 척결 등 개혁 반발에 대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1995년 11월 14일, 한·중 정상회담 후 회견에서 일본 각료들의 망언들에 대해)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1998년 2월 24일, 대통령 퇴임사)

“나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젊을 때부터 동지 관계였습니다. 협력도 오랫동안 했고 경쟁도 오랫동안 했습니다. 둘이 합쳐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 큰 힘을 쏟았습니다.”

(2009년 8월 10일, 김대중 전 대통령 병문안)-이상 <경향신문>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1948년 7월 18일 공포된 '제헌헌법' 전문입니다. 이후 우리 헌법은 '발췌개헌'으로 불리는 1952년 7월 7일 제1차 개정, '사사오입개헌'(四捨五入改憲)으로 잘 알려진 1954년 11월 29일 제2차 개정, 4월 혁명 후인 1960년 6월 15일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제3차 개정, 반민주행위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소급입법을 위한 1960년 11월 29일 제4차 개정, 1969년 10월 21일 제5차 개정, 1972년 12월 27일 제6차 개정, 1980년 10월 27일 7차 개정, 1987년 10월 29일 제8차 개정을 합니다. 제8차 개정은 현헌법입니다.

 

 

1969년 초부터 ‘3선 개헌’을 추진한 박정희 정권은 야당과 학생들의 저항을 철권으로 제압하고 끝내 국민투표로 개헌을 관철시켰다. 사진은 그해 9월9일 야당인 신민당 의원들의 국회 의사당을 점령하고 밤샘농성을 하는 모습. 사진출처 <한겨레>

 

주목할 점은 독재자들이 개정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이승만이 두 번했고, 박정희가 3번 했습니다. 특히 1960년 11월 제4차 개정을 빼고  1969년 제5차 개정과 1972년 제5차 개정은 오로지 박정희 자신의 독재 연장을 위한 개헌이었습니다. 자신의 집권을 위해 헌법마저 자기 입맛대로 개정한 것입니다. 박정희에게 민주주의란 자신의 권력을 위한 도구일뿐, 시민의 권리와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헌법을 개정해도 전문은 제헌헌법 그대로였습니다. 이승만은 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시도했지만, 헌법 전문만은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4월 혁명 이후 권력구조를 개편한 3차 개헌 그리고 제4차 개헌까지는  제헌헌법 정신을 그대로 잇겠다고 천명한 것입니다.

 

박정희, 군사반란 일으키더니 헌법마저 내 맘대로

 

박정희와 군사반란 세력인 국가최고재건회의 포고 제4호를 통해 국회(민의원·참의원) 및 지방의회를 '해산', 5월 22일 포고 제6호 정당 및 사회단체 해산합니다. 헌법기관과 정당을 해산함으로써 대한민국 대의민주의를 무력화시켜버린 것입니다. 이어 6월 6일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제정하고 공포합니다. 이 법은 헌법을 대신합니다.  

 

박정희 국가재건회의는 1962년 11월 5일 개헌안발의 공고, 30일간의 공고기간, 12월 6일 개헌안 통과, 17일 국민투표, 26일 공포, 1963년 12월 27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박정희는 이 헌법 개정에서 전문도 개정합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4차 개정까지는 헌법 전문이 제헌헌법을 따랐습니다. 박정희가 개정한 헌법 전문에는 "5·16혁명 이념을 헌법정신"이라는 문구가 들어갑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 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제도를 확립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여,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된 헌법을 이제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그리고 괄호 안 "우리들의 정당 또는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를 삭제했습니다. 군사반란을 "혁명"으로 넣고, 국회라는 단어를 빼버렸습니다. 박정희는 이 때부터 국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권분립 자체를 부정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박정희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헌법 개정

 

하지만 당시 헌법은 대통령 연임은 가능했지만 3선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박정희는 6년 후 이른바 '3선개헌'을 시도한다. 박정희는 야당과 김종필·길재호·김성곤·등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1969년 9월 14일 새벽 2시 국회 제3별관에 122명을 모아놓고 통과시킵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그것도 '기명투표'였습니다. 이어 10월17일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은 '투표율 77.1%, 찬성 65.1%'로 확정됐습니다. 박정희 영구집권 계획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1969년 9월 15일자 <경향신문> '14일 새벽 2시 30분 제3 별관'이라는 글귀가 선명합니다. 박정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헌법 제69조 3항은 "대통령의 계속 재임은 3기에 한한다"였습니다. '박정희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헌법 개정이었습니다. 박정희를 위해서 대의민주주의 기본 절차를 깡그리 무시해버렸습니다. 얼마나 떳떳하지 못했으면 일요일 새벽에 그것도 국회 본회의장이 아니라 제3별관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까. 헌법 전문 역시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라고 했으니, 박정희를 위해 헌법을 뜯어고쳤습니다. 이것이 민주공화국 헌법이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그게 박정희였습니다. 이런 박정희가 구국의 대통령이라니, 통탄할 일입니다.

 

삼선개헌에 누구보다 반대한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김 대통령은 박정희가 삼선개헌을 하면 나중에 종신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김 대통령은 69년 7월 19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3선개헌 반대 시국 대연설에서 박정희 3선개헌을 질타했습니다. 김 대통령이 연설한 분량은 17분 가량입니다. 이 연설을 위해 10시간 이상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아래는 당시 연설 내용입니다. 출처는 김대중 도서관입니다.  

 

지난 6월28일자 조간신문을 보니까 경기도 안성에서 황소 한마리가 미쳐 가지고 주인 내외를 마구 뿔로 받아 중상을 입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 황소를 때려잡으려고 몽둥이를 들고 나섰지만 잡지 못해서 마침내 지서 순경이 와 가지고 '칼빈' 총을 다섯방이나 쏘아서 기어이 때려 잡았습니다. 나는 이 신문을 보고 '과연 천도가 무심치 않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웃음)

왜? 대한민국에서 황소를 상징으로한 공화당이 지금 미쳐 가지고 국민 주권을 때려잡을 3선개헌 음모를 하니까 상징 짐스인 황소까지 같이 미쳐서 주인한테 달려든 것이다, 이것이예요. ('폭소!' 환성 박수)

내 오늘 여기 와 가지고 '반공을 하고 국방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겠느냐?' 하는 것을 내가 여기서 배웠습니다. 그것은 야당이 강연을 해야돼! 왜? 서울시에서는 40만에 달하는 예비군을 오는 22일 부터 소집하기로 했다가 신민당이 연설을 한다니까 어제 저녁부터 부랴부랴 서둘렀다 말이야! 여러분, 서울시가 아무리 그렇게 예비군을 소집하고 경찰관이 나와서 삐라를 뿌리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 편이여. 보시오 .(환성.박수)

지금까지 오던 비도 딱 그쳤어! (박수. 환성)

3선개헌을 반대하는 데모가 지난 방학 전에 전국에서 퍼졌습니다. 데모를 제일 치열하게 한데가 어니냐? 서울이 아닙니다. 경상도, 정권의 본고장인 경상도서 제일 데모를 치열하게 했어! 그것도 박정희씨가 나온 경상북도라 그말이여! 대구서는 대하교뿐이 아니라 모든 고등학교가 총 동원됐어!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박정희씨가 대통령을 그만 두고나면 그 대학의 총장을 할 것이라는 영남대학교 학생들의 데모구호가 재미있다 이말이여! 무엇이라 했느냐? '미친 황소 갈 길은 도살장 뿐이다.' 그랬다 그 말이여! (박수 .환성)

내 오늘 여기서 450만 서울시민과 더불어 박정희 대통령과 한마디 얘기 좀 해야겠어! 박정희씨여! 당신은 지금 입으로는 젊잖은 소리 무어라고 무어라고 하지만 당신 내심으로는 헌법 고쳐가지고 71년 이후에도 영원히 해먹겠다는 시커먼 배짱가지고 있는 것 사실 아니오? 3선개헌은 무엇이냐? 이나라 민주국가를 완전히 1인 독재국가로 이 나라의 국체를 변혁하는 것이여!

3선독재가 통과 되는날에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하는 조문은 장사지내는 날이다 이 말이여! ('옳소!' 박수)

'히틀러'도 도조히데키도,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 음모에 의한 1인 독재도 민주주의의 적인데는 다름이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이말이여! ('옳소' 박수)

아.......이나라가 누구 나란데! 이나라가 박정희씨 나라요? ('옳소!')

이 나라는 대통령은 바뀌어도 헌법은 영원한 것이여! 헌법이 박정희씨 보다 위여! 박정희씨를 위하여 헌법을 바굴 수는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이 말이여!('옳소' 환성 .박수)

아까 유당수(兪黨首)께서도 말씀 했지만 놀라운 이야기여! 머......이번에 헌법을 고치면 지금 같은 준전시하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안하겠다? 이번에 개헌만 되면 71년에는 선거를 안하겠다는 게여! 다시 말하면 털도 안 뽑고 먹겠다는 게여! (폭소)

공화당에 윤치영(尹致暎)씨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 '박정희 대통령은 단군이래의 위인이다." 이랬다 말이여! 단군이래의 위인이니까 신라의 김유신, 고려의 태조 왕건, 이조의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보다 더 위대하다 그 말이여! 그런데 이사람 대통령 갈릴때마다 똑같은 소리를 한다 말이여. 과거 이박사가 4사5입 개헌 때도 '이 박사는 개국 이래의 위인이다.' 이랬어! 우리가 과거에 결혼식에 가면 축사를 많이 했는데 축사를 하는 사람마다 똑같은 소리를 해. 신랑은 대학을 나온 모범 청년이고 신부는 가정에서 부덕을 닦은 요조 숙여라고. (폭소)

아마 이 양반 결혼식의 축사로 착각을 한 모양이여. (폭소.박수. 환성)

이번에 아폴로 11호가 달세계로 가는데 제발 안되었지만 이런 양반들을 실어다가 거기다 두었으면 대한민국이 편할텐데.(폭소,박수)

내 박정희씨가 단군이래의 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만일 박정희씨가 3선 개헌을 그대로 추진했다가는 박정희씨가 단군이래의 위인이 아니라 단군 이래의 폭군이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말을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하고 싶소.( '옳소' 환성. 박수)

왜! 남은 정치생활 가지고 평생에 국회의원 한번 못된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밤중에 한강 건너와 가지고 남의 정권 빼았아 가지고 10년 해 먹었으면 됐지, 뭘.......... 다시 자기가 만든 헙법을 고쳐 가지고 또 해 먹겠다는 것이여!(폭소. 박수)

지난번 국회에서 김영삼의원이 '박정희 씨가 독재자다' 이랬다 말이여! 공화당 사람들이 노발대발 했어!

그야 아무리 못 생긴 사람도 대놓고 '너 이 자식 못생긴 놈' 이라고 하면 화 안내는 사람 없겠지요. 박정희씨가 독재자냐 아니냐? 단적인 증거가 있어! 명색이 민주주의국가에서, 명색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나라에서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가 국민의 머슴인 대통령에 대해서 독재자라 했다 해서 그 말이 신문에 한 자도 못나간 그 사실이 '이 나라가 독재가 지배한 나라'라는 것을 반증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이말이여, 여러분. ('옳소.' 환성. 박수)

오늘날 이 나라 현실이 어떻습니까? 언론의 자유는 완전히 말살되었어. 신문은 신문기자나 편집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보부가 넣어라, 빼어라, 높이 올려라, 아래로 내려라. 다 결정한다 그 말이여. 지금 오늘날 신문같이 불쌍한 사람들이 없어.

국회는 어떻소?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자기 마음대로 선거할 권리가 있습니까? 지난 6.8선거가 온통 부정선거여! 나도 목포에서 박정희씨한테 좀 단단히 당해 보았어. (폭소)

이 양반이 직접 와서 목포에서 연설을 하고 전국무위원들을 데리고 와서 회의까지 하고 한때 대한민국 정부가 서울서 목포에 이사를 왔어.(폭소.박수)

선거가 끝나고 올라와 보니까 왠지 국회는 온통 가짜 투성이여. 진짜는 3분의 1도 안되고 3분의2는 국민이 뽑은게 아니라 중앙정보부나 경찰이나 면장.반장들이 뽑은 사람이다, 그 말이여. 이래 가지고 이 사람들이 국회에서 우리가 아무리 옿은 소리를 해도 듣지 안해! 그저 황소 같이 고개만 숙이고 정부가 하라는 대로만 한다 이말이여! (폭소)

하도 분통이 터져서 '이 자식들아' 하고 한번 달려 들어 보지만 웬걸 공화당 사람들은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많아서 유도가 3단, 당수가 5단이었다, 그 말이여! (폭소)

해 볼 수가 없어.(폭소)

이 다음에 국민들이 국회의원 뽑을때 제발 당수 잘 하고 유도 잘 하는 사람 빼 주었으면 좋겠어.(폭소)

여러분, 나는 저기 계신 김구 선생과 3열사의 무덤 앞에서 여러분 앞에 맹세 합니다. 나는 피로써 여러분 앞에 맹세해! 나는 이 조국의 멸망과 국민을 불행의 진구렁 속으로 끌고간 박정희씨의 3선 개헌에 대해서는 이 사람의 정치적 생명뿐 아니라 육체적 생명가지 바쳐서라도 의정단상에서 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을 여러분 앞에 맹세 합니다. ('옳소!' 환성.박수)

우리는, 우리 신민당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집 주소를 서대문 현저동 101번지로 옮긴지 오래여.(폭소)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있다 이말이여! 천명대로 우리의 목숨을 마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두려워할 사람들이 아니여! 국민 여러분이 자유와 조국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단코 박정희씨의 3선 개헌을 저지하고야 말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앞에 분명히 말씀한다, 그 말이여!

마지막으로 이사람은 온갖 정성과 온갖 결심으로써 박정희씨에게 마지막 충고하고 호소 합니다.

박정희씨여! 당신에게 이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일편의 양심이 있으면, 당신에게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할 지각이 있으면, 당신에게 4.19와 6.25때 죽은 우리 영령들 죽음의 값에 대한 책임이 있으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3선개헌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옳소!' 환성.박수)

국민 여러분이여! 국체의 변혁을 꿈꾸는 3선개헌을 봉쇄합시다. 국민 여러분이여! 민주주의를 이땅에 꽃피워 가지고 우리나라의 후계자들에게 영광된 조국을 넘겨 줍시다. 여러분, 다 같이 궐기해서 3선개헌 반대투쟁에 한사람 한사람이 결사의 용사가 될 것을 호소하면서 저의 말씀을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이 1일 오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치료 격리센터가 있는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로 고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한겨레>

 

 

2일 오전 현재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사망자가 2명 발생했습니다. 3차 감염자도 처음으로 2명 발생했습니다. 이로써 사망자 2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확인된 환자 수는 모두 2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박근혜정권은 메르스(MERS)를 키르스(KERS)로 만들었습니다

 

박근혜 정권 전염병 대처 능력이 뻥뚫렸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대통령은 12일이 지나 초기대응이 미흡했다고 주무부처를 비판한 후, "아울러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괴담이나 잘못된 정보는 신속히 바로잡고 일상생활에서의 예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려야 할 것"이라며 인터넷 괴담 차단도 지시했을 뿐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국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최정점에서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박근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방역체계가 뻥 뚫렸는데도 진짜 관심은 국회법 개정에 있었습니다. 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의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이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정부의 정책 추진은 악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그리고 우리 경제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단적이 예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평소와 달리 다소 굳은 표정으로 회의장에 들어섰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정권은 메르스(MERS)를 케르스(KERS)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구제역을 초기에 진압한 김대중 대통령이 떠 오릅니다. 우리나라에서 구제역이 처음으로 발생한 2000년 김대중 정부 때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구제역을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당시 김성훈 농림부 장관이 쓴 한 기고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 전 장관은 지난 2011년 1월5일 <전남일보>에 기고한 '2000년 구제역 사태의 추억'제목 글에서 "농림부는 파주의 한 농가에서 구제역 발생 사실을 확인하자 즉각 반경 500m 이내의 축사와 가축과 건초 등 모든 전염 매개물을 소각 또는 살처분했다"며 "다만 동일지역 공직자와 순경들만으로는 파주로 통하는 초소 24곳을 철통같이 봉쇄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인정에 약한 토착 정서상 확산을 막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농림부장관은 꼭두새벽에 국방부장관에게 통사정을 했다. 이태전 있었던 대만 전역에 걸친 구제역 피해사례(400만 두 살처분)를 들어 군의 지원을 요청한 것"이라며 "마침내 새벽 4시경 군이 동원됐다"고 말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구제역,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진압하라"

 

김 전 장관은 이어  "그날 아침 농림부장관의 구제역 발생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구제역 진압 사상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명지시를 내렸다"면서 "방역은 기존의 규정에 얽매이지 말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하고, 피해농가에 대한 보상은 농민들의 기대 이상으로 파격적으로 행하라. 그래야 민관이 자발적으로 협력할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부처는 합심하여 만전을 기하라"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전 장관은 "그에 따라 군은 첫날부터 구제역 진압의 최선두에 나서 초동진압이 가능하였다"며 "파주 이외의 충남 경기 5개 시ㆍ군 구제역 발생지역에서도 군은 초기 출입통제와 소독실시 그리고 살처분 매몰조치까지 솔선수범했다"고 신속했던 초동 대응 상황을 전했습니다. 

 

2011년 1월 구제역 대재앙 당시 이명박이 한 일은 없었습니다. 대책이 없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이런 강력한 대응으로 구제역으로 살처분 가축은 모두 합쳐 2200마리에 그쳤습니다. 탁월한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구제역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구제역 대재앙'으로 기록되고 있는 지난 2010년 1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대한민국 구제역으로 축산농가는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명박은 구제역 발생 50여일만인 1월16일 강원도 횡성을 찾아 "앞으로는 살처분을 최소화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구제약 대재앙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박근혜도 이명박이 간 길을 가고 있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3차감염자까지 나타자자 '대창궐'을 우려하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국내 최고 메르스전문가인 송대섭 고대 약학대 교수는 2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그 사태가 되면 '팬데믹(pandemic)'으로 가는 전초전이기 때문에 정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이라며 대창궐을 우려하면서 정부가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메르스, 대창궐할 수도"

문형표 복지부장관, 과연 그는 메르스를 진압할 수 있을까?

그는 "이게 지역사회로 불특정다수로 번져나가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예의주시해야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뷰스앤뉴스>에 따르면 '팬데믹'이란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염병 경보단계 6단계 가운데 최고 경고등급인 6단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대창궐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악명 높았던 팬데믹은 중세 유럽 인구 1/3의 생명을 앗아간 흑사병입니다. 20세기에는 1918년 스페인독감(사망자 약 2천만~5천만 명 추정), 1957년 아시아독감(사망자 약 100만 명 추정), 1968년 홍콩독감(사망자 약 80만 명 추정)을 팬데믹으로 볼 수 있다. WHO는 2009년 6월 '신종플루'로 불린 인플루엔자 A(H1N1)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한 바 있다고 <뷰스앤뉴스>는 전했습니다.

그는 특히 3차 감염 발병에 관련해 "3차 감염은 사실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WHO에서도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 또는 여러 연구결과를 볼 때 '사람 대 사람'의 감염이 될 때는 바이러스의 감염률이 굉장히 떨어지기 때문에 3차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지금 이미 3차 감염자가 확인이 됐고 그런 상황이라 상당히 당혹스럽다. 이제는 불특정다수로 옮아가는 그야말로 지역사회로 전파가 되느냐 안 되느냐가 오히려 더 관건인 것 같다"며 대창궐을 거듭 우려했습니다. 
 

 

박근혜정권은 메르스를 케르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메르스 사망자 2명과 3차 감염 사실이 발표된 2일 박근혜 대통령은 전남 여수시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농식품 벤처 창업자 손모아 씨로부터 농식품 벤처 창업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연합뉴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지리멸렬 새정치, 손학규를 부른다

토담집에서 만난 손학규 "무념무상 흉내낼 수 있을까"

지리멸렬 새정치가 불러낸 손학규, '저녁이 있는 삶' 부활할까?

토담집서 만난 손학규 "다 떠난 사람인데.."

'썰전' 이철희 "친노 문재인, 비노 세력 이끌 사람은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내홍이 이어지자, 언론들이 손학규 전 의원을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손 전 의원도 언론과 인터뷰를 합니다. 그는 지난 20일 jtbc와 인터뷰에서 "(복귀를 위한 마음 정리는?) 마음정리를 했는데 무슨 마음 정리를 해? 쓸데없는 얘기 그만두고 이제 차 마셨으니까 일어날 준비해.", "내가 여기 이렇게 앉아있으면 저 바다 보고 나무도 보고 저 새 우는 소리라도 듣고 그러면 무념무상이 뭔지는 모르지만 무념무상을 그냥 흉내 좀 낼 수 있을까"라고 했습니다.

 

어떤 정치인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를 국무총리에 임명하고 했습니다. 호남에서는 대선 지지율에서 1위를 달리기도 했습니다. 정치평론가들도 나섰습니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은 종합편성채널 JTBC '썰전'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손학규 전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친노 세력은 문재인이라는 리더가 있다. 비노 세력을 이끌어가기에 무난한 사람, 그게 손학규라고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는 "이 정도로 손학규 전 의원이 나오진 않을 거다. 일부 세력 때문이 아니라 당 전체가 손학규라고 생각해야 나올 거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썰전에 출연한 정치평론가 이철희 소장은 손학규 전 의원이 '비노세력을 이끌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손학규는 호남을 대변하고, 호남은 그를 선택할까요?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을 구원할 사람일까요? 그의 실체를 안다면 그럴 수없습니다. 그가 새누리 전신인 한나라당과 신한국당에 몸 담았던 사람임을 알 것입니다. 그가 신한국당 대변인으로 있을 때 김대중 대통령(당시는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안 다면 호남은 그를 지지할 수 없습니다.

 

손학규 "김대중에게 연민의 정 마저 든다, 공작정치 동반자"

 

손학규 대변인은 12일 김대중 총재의 지난 6일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손대변인은 김 총재가 "대통령에 세번 나왔지만 한 번도 공정한 심판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데 대해 “국민이 다 아는 것을 말 두어마디로 속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손대변인은 "과연 김 총재가 불공정한 심판에 의해 대선에 낙선했는지 아니면 지역대결구도의 덫에 걸려 낙선했는지 솔직히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1995.10.14. <서울신문> 
 
손 대변인은 "공당의 총재요 원로인 김 총재가 오죽 초조했으면 이판사판식의 극한 상황을 상정했을까 연민의 정을 금치 못 한다"고 비꼬았다. 손대변인은 또 김 총재의 전면투쟁 대상은 “부도덕하고 위선적이며 구시대적인 정치행태의 표상인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그 연장선상에 "공작정치의 피해자라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공작정치의 동반자」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라"고 통박했다.-1995.11.14.<경향신문>   
 

손학규 "김대중은 청산대상"


손학규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김대중 국민회의총재가 김영삼 대통령의 노태우씨 비자금 3천억원 수수설을 거론한 것에 대해 "공당의 총재라면 명백한 사실에 근거해서 말해야 한다"면서 "김 총재야말로 청산대상"이라고 반격했다-1995.11.23 <한국일보>  
 
손학규 대변인은 이날 고위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김 총재가 보수­혁신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이분법적 이중성, 혹은 이념적 약점을 숨기고 위장하기 위한 선제공격"이라고 비난했다-1996.01.14 <세계일보>

 

 

김대중을 청산대상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가 호남 정신을 계승하고, 호남을 대변하고, 나아가 개혁진보세력을 위해 일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국민회의는) 원초적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당"(손학규 신한국당 대변인) 신한국당의 손대변인은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색깔론 시비와 관련, 논평을 발표 "과거 간첩 서경원을 통해 북한 김일성의 돈을 받고 5·18학살 주범으로 공격한 노태우 전 대통령한테서 20억원을 받는 등 극좌에서 극우까지 가리지 않고 돈을 받은 사람으로서 색깔논쟁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난했다. 손대변인은 국민회의측의 신한국당 해체요구에 대해 "우리 당은 구시대 부끄러운 유산을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워 자기쇄신을 추구하는 국민정당"이라면서 "구시대 유물인 지역감정에 의지해 김대중씨 한 사람의 대권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급조된 사당(사당)인 국민회의야말로 원초적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당"이라고 공격했다.-1996.01.16<서울신문> 

 

국민회의를 김대중 대통령 사당으로 몰아세웠습니다. 그럼 현재 새누리당은 어떨까요? 박근혜를 위해 온힘을 다합니다.

 

손학규 "김대중, 지역감정에 의지해 대권욕 충족, 사상적 불투명성"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지난해 7월 전남 강진 다산초당 인근 백련사 뒷산 토굴(흙으로 지은 집)에서 신발끈을 매고 있다. 연합뉴스


손학규 대변인은 "국민회의가 색깔론을 제기하는 것은 김대중 총재의 사상적 불투명성을 감추고 우리당의 영입을 방해하려는 모략"이라며 "우리도 김 총재 및 국민회의 구성원의 전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1996.01.17.<한국일보>  
 
"김 총재가 간첩 서경원으로부터 김일성의 돈을 받은 사실과 김 총재의 전력시비, 국민회의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사상적 배경에 대해 적나라하게 지적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냈다고 손학규 대변인이 전했다.-1996.01.17.<한국일보>  
 
손학규 대변인도 논평을 내어 "김 총재의 안정론은 국민들의 요구를 입술로만 충족시키려는 위장전술"이라며 "국민회의가 제1당이 되면 정국을 오직 '김대중 총재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서만 이용하려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1996.01.12<한겨레> 

 

 

 

지난 2012년 8월6일 김대중 대통령 서거 3주기를 기념해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휘호ㆍ어록전시회 개막식에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손학규 후보가 축사를 하고 있다. 
 
신한국당 손학규 대변인은 "김영삼 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에서 임기 중에는 어떠한 개헌도 없다는 것을 천명했음에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국민회의 김 총재가 오직 대권욕에 사로잡혀 근거 없는 사실을 날조유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1996.01.25. <경향신문>  
 

손학규 "김대중, 유언비어 날조"


손학규 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김대중 총재는 내각제 개헌 음모설, 도청설 등 1일 1건주의 유언비어 날조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반박했다.-1996.01.27. <세계일보>  
 
신한국당 손학규 대변인(20일)=김대중 총재는 위장된 안정의 가면을 빨리 벗어버리고 진면목을 드러내야 한다(정치적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총선에서 국민회의가 1당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신한국당 손학규 대변인(20일)=행동하는 흑심인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흑색선전은 이제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여권이 내각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데 대해). 신한국당 손학규 대변인(26일)=김대중 총재가 도청설을 언급한 것은 정신이상자의 망발이다.-1996.01.31. <세계일보>  

 

손학규 "김대중, 위장된 가면 빨리 벗어버려야"
 
손 대변인은 "두 김 총재가 손을 맞잡고 원 구성을 거부하겠다며 협박하는 모습에 기가 막힌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날 합의사항을 국민모독이자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한 뒤 "선거 패배를 호도하고 자신들의 선거부정에 대한 처벌을 면하려는 얕은 수"라고 공격했다.-1996.05.05.<경향신문>

손 대변인은 "두 김 총재의 협박에 기가 막힌다"면서 "노욕 때문에 정치를 어지럽히는 추한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말라"고 근래 보기 드문 어조로 격렬하게 비난했다.-1996.05.05,<서울신문> 
 
손학규 총재 비서실장은 "정부 조직개편위는 법적으로 정부기구가 아닌 김대중 당선자의 임의단체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다"면서 "위상이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우리 당에서 참여한다고 해서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겠느냐”고 반문했다.-1998.01.06<한국일보>   
 
손 후보는 (한나라당경선)당선 인사를 통해 "본선에서 기필코 승리해 김대중 정권의 오만과 독주를 막아 내겠다"-1998.04.29. <세계일보>  

 

손학규 "김대중 정권 엉터리 개혁은 망국 개혁"
 
손학규 의원은 "국민의 정부 출범 이래 개혁이 제대로 된 게 없다"면서 "오늘만 불안하게 눈을 뜬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2000.07.12.<국민일보>  
 
"김대중 정권의 엉터리 개혁은 망국 개혁이다”(손학규 의원) 등의 격한 발언들이 쏟아졌다.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만 해결 하겠다는 건 어리석은 짓"'김대중은 5.18을 정치적으로 이용 말라'' 5.18 특별법은 반드시 제정될 필요는 없다?'-2001.08.18<한국일보>)  

손학규가 김대중 대통령을 어떻게 비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행동하는 흑심", 심지어 "치매환자"라는 모독까지 했습니다. 손학규 실체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는 호남을 대변할 수도, 해서도 안 됩니다. 무엇보다 개혁진보세력을 대변할 정치인도 더더욱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목사가, 전도사 황교안에게

박근혜 2015.05.24 07:00 Posted by 耽讀

 

 

 

황교안 전도사가 국무총리 후보자가 됐군요. 전도사 신분 최초의 총리 발탁, 축하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황교안 법무장관을 국무총리에 지명하자 시사평론가 김용민 씨가 지난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황교안 후보자는 아주 신앙이 깊은 개신교 신자입니다. 교회 전도사이니, 신앙이 얼마나 깊겠습니까? 그가 남긴 글과 어록에서도 얼마나 신앙이 좋은지 알 수 있습니다.

 

'전도사' 황교안 "하나님을 섬기는 법조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조인으로서, 교회분쟁을 바라보는 안타까움 속에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모쪼록 이 작은 노력이 교회를 질서 있게 하고, 교회분쟁을 예방하며, 그래서 성도들이 편안하게 교회생활을 하는 데 이바지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2012년)

황 후보자는 교회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고, 기독교 민영 교도소인 아가페 설립 이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검사 재직 때는 검찰 신우회에 적극 활동했습니다. 지난 2012년 펴낸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이란 책도 펴낸 책은  '기독교편향'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현행 세법이 종교단체에 대한 과세를 최대한 자제하고는 있지만 유독 부동산 등기에 대한 등록면허세를 비과세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잘못된 조치며 이에 대한 과세특례조항이 다시 마련되어야 한다."
"담임목사 사택과는 달리 부목사, 강도사, 전도사 등의 사택을 세금 부과 대상으로 판결하고 있다.(중략)는 법원의 견해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교회도 교회 건물 및 부지, 사택, 기도원, 수양관 등 여러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어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할 가능성이 있으나 다행히 현행법은 교회부동산에 원칙적으로 비과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소득세법 제12조는 '비과세소득'에 대하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목회자 사례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보면 목회자의 사례비도 급여로 보는 한 소득세 과세 대상이 된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나 목회자 사례비는 일반 급여와 현저히 다르고, 그 원천이 된 성도들의 헌금에 대하여 이미 성도들이 세금을 납부한 것일 뿐 아니라, 종교자유 보장을 위해서라도 비과세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적시하지 않았다."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중에서

종교인 과세와 교회 부동산에 대한 과세를 강하게 비판한 겁니다. 황 후보자는 목회자 사례비는 일반 급여와 현저히 다르다고 했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거룩한 봉사자이므로 과세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입니다.

 

목사만 성직아 아니라 농민,어민,노동자도 성직

 

하지만 목사만 성직일까요? 목사만 성직이라는 주장은 구약에 국한된 것으로 신약성경이 말하는 '만인제사장주의'와도 배치됩니다. 목사만 성직이라 아니라 농부, 어부, 광부, 청소노동자도 성직입니다. 소득이 있다면 세금을 내야 합니다.

 

 

한 대형교회 조감도

 

황 후보자는 과세특례까지 주장합니다. 한국교회는 세계 50대 교회 중 한국이 23개가 있다고 자랑합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수 십만 명이고, 수만 명 모이는 교회다 많다. 일부 대형교회지만, 교회만큼 완벽한 자본주의가 실행되는 곳도 없습니다. 많이 모이면 헌금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수십억, 수백억입니다. 하지만 종교법인이라는 이유로 세금 한 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수익이 있는데도 교묘히 법을 악용해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 세법을 어기는 것만 아니라 하나님 공의에도 맞지 않습니.

 

'고검장' 황교안 "김대중 씨가 대통령 되고 나니까"

 

황교안은 고검장 재직으로 있던 때 부산 호산나교회 강연에서 공안검사들이 대거 한직으로 밀려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검찰 인사를 ‘환란(患亂)’에 빗대기도 했습니다.  그는  부산고검장으로 있던 2011년 5월11일 부산 호산나교회 특별 강연에서 "(김대중)이런 분이 대통령이 딱 되고 나니까 서울지검 공안부에 있던 검사들, 전부 좌천됐다"고 말했습니다. <경향신문> 황교안 총리 지명자 “김대중·노무현,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경향신문>이 입수한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의 2011년 5월11일 부산 호산나교회 특별 강연 동영상 갈무리


그는 1989년 서경원 전 평민당 의원의 무단 방북 사건을 언급하며 "이때 김 대통령도 재판에 넘겨졌기 때문에 검찰과 야당의 적대관계가 심각했다" 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공안부 검사들에 의해 대우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구속까지 된 분"이라며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부에 오래 있던 사람들에 대해 여전히 곱지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황 후보자는 당시 자신은 대법원 소속인 사법연수원 교수여서 직접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은 점을 들어 "하나님께 '환란'으로부터 도피를 허락해주신 것에 감사드렸다"고 말했습니다.

 

참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자신이 겪은 일을 환란에 비유하다니. 그가 기독교 진리를 위해 희생당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과는 전혀 관계 없는 공안통치를 하면서 말입니다.

다음은 <경향신문>이 황 후보자가 2011년 5월11일 부산 강서구 호산나교회에서 가진 강연 녹취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 "김대중씨 대통령 되니 좌천"

1997년 겨울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됐어요. 김대중씨는 계속 재야활동을 했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조사받고 검찰에서도 조사받고, 정부하고는 계속 갈등했던 분 아닙니까. 대통령 되기 전 서경원이라는 국회의원이 북한에서 가져온 돈을 받았습니다. 그게 문제가 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서울지검 공안부에서 수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된 일이 있었어요. 검찰과 야당 사이에 적대관계가 심했는데 이런 분이 딱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그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에 있었던 검사들은 물론 소위 ‘공안통’으로 이름나 있는 검사들은 전부 좌천되는 거예요. 평상시 같으면 갈 수 없는 보직으로 막 발령 내버렸어요. 6개월마다 인사를 하는데 첫 번째 인사에서 공안검사들이 굉장히 고통받고, 두 번째 인사에서도 그런 고통을 주고, 세 번째 인사에서도 고통을 주니까 많은 검사들이 사표를 내고 나가고 이랬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은 구속됐던 분"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에 의해 구속까지 됐던 분이에요.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부에 오래 있던 사람들에 대해 또 곱지가 않겠지요. 그러던 중 제가 사건 하나 잘못 처리했어요. 그분이 볼 때.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었는데, 공안부에서 어떤 교수 하나를 구속하겠다는 거예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석 달쯤 전에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런 거를 처벌하면 되겠느냐, 세상이 바뀌었는데”,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했습니다. (제가) 보고를 받아보니까 구속 사안이 맞아요. 구속하겠다는 의견을 올렸어요. 검찰총장도 보고를 딱 받아보고 “구속하는 것이 좋겠다”고, 이런 생각 들었어요. 그래서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를 해보니깐 구속을 해야 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장관은 “대통령의 뜻을 극단적으로 거스를 수는 없다”, 이래 가지고 (총장은) 이건 부당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기에 사표를 쓰고 나가버렸어요.

황 후보자는 '삼성 X 파일 사건'에서 삼성·떡값 검사는 무죄, 노회찬 의원은 기소 결정을 내린 장본인입니다. 사법정의를 정면으로 거스른 것입니다. 전도사 황교안, 과연 기독교 신앙에 신실한 사람일까요? 자신에게 먼저 질문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