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의학은 '절대'인가

책동네 2017.11.11 05:30 Posted by 耽讀

1982년 7월 26일  뜨거운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 야구를 하였다. 정말 재미있는 경기였다. 그런데 한 순간 친구가 뒤에서 발을 걸어 나를 넘어지게 하였다. 넘어지면서 팔을 짚었는데 골절되었다. 워낙 시골이라 병원에 가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고통이 너무 심하여 몸무게가 3kg이나 빠졌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팔을 뒤틀면서 골절된 부분을 끼어 맞추었다. 무려 25년 전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 골절 고통은 사라졌다.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완디의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읽으면서 25년 전 골절 사건이 기억났다.

 

과연 의사는 무엇일까? 우선 그들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들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의사만큼 고귀한 직업도 없다. 사람이 만든 직업 중 '생명'을 다루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다. 그러므로 의학과 의사는 환자를 대할 때마다 '사람'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의학와 의사에 대한 이런 의식은 현대의학과 의사를 '절대'의 개념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을 가지게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의사는 전지전능한 '신'인가? 아니 의사는 사람이기에 오류의 가능성은 있더라도 '의학'은 오류가 없는 것인가?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은 '오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우리는 의학을 지식과 처치가 질서정연하게 조화를 이루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부단히 변화하는 지식, 불확실한 정보,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들의 모험이며, 목숨을 건 줄타기이다. 우리 일에는 과학이 있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또 습관과 직감, 때로는 단순한 낡은 추측도 있다. 우리가 아는 것과 우리가 목표하는 것 사이에는 늘 간극이 있다."(본문16쪽)

 

의사는 누구인가? 사람이다. 의사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그가 행하는 모든 진단과 진료, 치료 과정에는 오류가능성이 항상 있다. 그는 어떤 환자라도 고칠 수 있는 초월자가 아니다. 자기의 의사로서 능력을 비하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를 찾은 환자의 병을 진료하고, 치료하는 일에 있어서 완벽을 추구할 수 없다. 설령 그를 완전히 치료할 수 없을지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그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의과 의사는 부단한 노력과 훈련을 통하여 조금씩 진보한다. 인간의 모든 학문은 노력과 훈련을 통하여 진보한다. 의사와 의학이 피아노와 피아니스트, 성악과 성악가가 다른 이유는 단 하나, 의사와 의학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의 생명을 직접 다루는 직업이라는 차이일 뿐이다. 그 차이는 엄청나지만. 이런 훈련과 노력 과정에서 의료사고는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가완디가 말하는 '의료사고'의 예를 보자.

 

"일반외과의 커다란 금속제 도구를 환자복부에 남겨둔 채 닫아서 내장과 방광벽이 찢어진 경우, 암 전문 외과의가 엉뚱한 유방의 생검을 하는 바람에 암 진단이 몇 달이나 늦어진 경우,  심장 전문 외과의가 심장판막수술을 중 작지만 중요한 단계를 건너뛰는 바람에 환자가 사망한 경우."(본문 79쪽)

 

가완디의 예를 읽어면서 2006년 11월 큰 형님이 경운기 사고로 겪은 일이 생각났다. 응급실에 실려가 X-선, CT촬영을 했는데도 환자는 고통을 호소했고, 의사들은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다음날에야 고통의 원인이 대장에 천공이 뚤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미 복부에는 이물질이 흘러나와 부패하고 있었다. 생명은 위급했다. 의사들의 첫 진단은 실수였고, 생명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첫 진단은 잘못했지만 그 후에 모든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가완디가 예로 들었던 의료사고는 무능력과 부도덕한 의사들이 범한 사고가 아니라, 최고의 의과 의사들이 범한 사고였다. 그들은 실수하였고, 어떤 경우는 환자의 생명을 잃게 하였다. 고의는 아니지만 사고로 생명을 잃게 하였다. 최고였던 그들이. 여기서 한 가지. 의사와 의학, 환자들이 깨달아야 할 일이 있다.

 

인정과 신뢰다. 의사는 자신을 절대 믿어야 하지만 언제든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겸손이 필요하다. 환자는 의사가 100% 완벽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최선을 다하여 자기 가족과 자신을 치료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신뢰해야 한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은 의사와 의학의 실수를 발설하여 환자가 불신하도록 저술하지 않았다. 의사의 불완전성을 알림으로써 더 나은 의학의 진보를 통하여 모든 생명을 실수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기를 위함이다. 우리나라도 의사와 환자가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고 신뢰하는 의료 문화가 꽃피우기를 원한다. 

2012년 대선 당시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대화록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듬 해 정권을 잡은 박근혜 정권과 수구세력은 노 대통령이 NLL를 포기했다고 주장햤습니다. 심지어 정상회담록을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대화록을 자세히 읽어보면 포기는 커녕, 서해를 평화바다로 만들려는 노 대통령 의지가 얼마가 강한지 알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과 번영을 위한 평화선언을 했다. 7년 만에 만난 두 정상이 구로(劬勞)하여 만들어낸 선물이다. 평화선언 2항과 3항은 관심을 끌었다.

 

2.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 2007년 남북정상선언

 

남북 정상이 만나 이제는 적대시 정책을 거두고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하여 노력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평화번영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오기까지 우리는 적대시 정책을 통하여 서로를 증오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은 수많은 사건을 잘 알고 있다. 남북정상선언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책이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한 사람이 땅에 태어나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평균적 기준으로 70∼80년이다. 하지만 평균적인 시간이 같다고 해도 삶의 자리와 정황은 달리한다. 삶의 정황과 목적이 매우 달라 사는 방법 역시 다르다.

 

<태백산맥>은 각자 다양한 사람들이 해방정국에서 그들의 사상과 이념의 잣대를 통하여 진정한 평등과 자유가 무엇인가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다툼과 논쟁, 죽임의 난장까지 아우른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제주4·3항쟁, 여순사건,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이 고착화된 1953년 10월까지.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한 것은 과연 내가 그 자리에 자리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계급혁명을 꿈꾸다가 최후를 맞는 염상진, 전사 하대치, 중도적 민족주의자 김범우, 양심적 우익을 대표하는 서민영, 친일세력, 반공주의자를 대표하는 염상구. 염상구에게 강탈당하여 빨치산에 들어간 외서댁, 무당 소화, 그리고 손승호, 심재모, 최성학, 강경애, 전사 조원제….

 

계급혁명을 꿈꾸다가 좌절했던지, 혁명전사로 살다가 최후를 맞았든지, 친일분자와 반공주의자로 살다가 죽든지 그들은 나름대로 사상과 이념의 틀 안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자신들이 믿는 사상과 이념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념과 사상이 인간을 왜곡시켰다.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사상과 이념이 중심이었다. 사상이 사람의 지배할 때 그 사상은 다른 사상을 적대시하며, 결국은 살림이 아니라 죽임의 난장을 펼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태백산맥>은 빨치산의 삶을 통하여 사상과 이념이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치열한 투쟁을 그리고 있다. <태백산맥>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숭고한 인간정신이 어떻게 꽃피우는 지를 말한다.

 

차가운 삭풍이 그들의 발을 얼어붙게 하고, 배고픔을 면할 수 없을 때에도 그들은 사람다움을 위하여 투쟁했다. 그들의 투쟁에는 숭고함이 배어난다. 일제에 순응하고 민족을 학대한 자들이 해방을 맞자마자 반공주의자가 되어 또 다른 민족과 사람에게 배반을 저지를 때에 그들은 사람을 배반하는 길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숭고함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염상진의 육신의 장막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하대치와 그 동료들을 통하여 숭고함은 절정을 이룬다.

 

"그는 가슴을 펴며 숨을 들이켰다. 그와 함께 밤하늘이 그의 시야를 채웠다. 그는 문득 숨을 멈추었다. 그는 눈앞이 환하게 열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본 것은 넓게 펼쳐진 광대한 어두움이 아니었다. 그가 본 것은 어둠 속에 수없이 빛나고 있는 별들이었다. 그는 멀고 깊은 어둠 저편에서 명멸하고 있는 수많은 별들을 우러러보았다. 가을 별들이라서 그 초롱초롱함과 맑은 반짝거림이 유난스러웠다. 그 살아서 숨쉬고 있는 별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 별들이 모두 대원들의 얼굴로 보였던 것이다. 먼저 떠나간 대원들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혁명의 별들이 되어 어둠 속에서 저리도 또렷또렷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 <태백산맥> 10권 341쪽

 

과연 혁명은 실패했는가?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혁명은 실패했는가? 육신의 장막이 흙속에 묻히면서 인간혁명은 실패했는가? 조정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다운 세상을 꿈꾸던 인간혁명은 가을 하늘 별들처럼 초롱초롱하게 살아남았다. 아직도 미완이지만.

 

사람이 이런 세상을 꿈꾸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하대치는 염상진의 육신 장막을 땅에 묻었지만 가을 하늘 별을 염상진으로 승화시켰다. 그들의 혁명은 실패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꿈꾼 혁명은 사상과 이념인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인간혁명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한국이란 과연 무엇인가?

책동네 2017.10.28 05:30 Posted by 耽讀

우리나라 출판계는 <000시리즈>를 자주 내놓는다. 대부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참고서와 교육용이다. 어른들을 대상한 한 시리지물은 범우사에서 <범우문고>가 있다. <범우문고>는 이미 200권을 넘어섰다. 시공사의 <시공디스커버리총서>가 100권을 넘어선지 오래되었고, 도서출판 살림에서 <살림지식총서>도 300권을 넘었다. 문고판이지만 우리나라에도 100권 200권 300권이 넘는 시리즈 물이 나온다는 것은 출판과 책 읽는 문화를 위해서는 매우 좋은 일이다.  책세상도 <책세상 문고 우리 시대>라는 이름으로 문고판 시리즈를 2000년에 처음 내놓았다. 탁석산씨의 <한국의 정체성>이 첫번째 책이다.

 



'정체성' 대학 다닐 때 자주 사용했던 말이다. 하지만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받게 될 때 쉽게 답변할 수 없는 주제다. 우리는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의 용어를 말함에 있어서 개념을 명확히 하는데 매우 정확하지 못하다. 너무 쉽게 개념을 정립하고 단정한다. '정체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탁석산씨는 정체성을 무엇이라 말할까?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고찰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한국적인'것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을까? 한글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도로의 간판과 방송사의 프로그램 이름, 가수들의 이름을 보면 한글로 된 이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축구와 운동경기, 한국을 나타내는 경기를 볼 때 금방 한국인이 된다. 일상생활에서는 한국적인 것을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 번씩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마음껏 자랑한다. 이런 혼란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체성의 문제는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적이었다. 탁석산의 말을 들어보자.

 



"어떤 사물이 변화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그 사물로 인식되거나 존재할 수 있다면, 즉 우리가 변화된 사물을 변화를 겪기 전의 사물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것이 전통적인 정체성 문제이다. 변화를 겪으면서도 동일성이 유지된다면 그 동일성을 우리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본문 28쪽)

 



앞에서 말했던 언어 사용에 있어서 외국어가 한글을 지배하고 있다. 과연 한국인이라고 하면서 한글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는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김동수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서 살았지만 김동수가 먹는 것은 햄버거, 콜라, 스파케티 뿐이다. 말은 영어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너는 몸만 한국인지 다른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고 해도, 김동수는 아니다. 겉으로는 그럴지 몰라다. 내적으로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나는 한국인이라 주장한다. 정체성 확립 기준을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중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이토록 정체성이란 매우 난해한 문제다.

 



탁선산은 한국인이란 개인과 한국이라는 집단의 정체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라고 해서 모든 한국인이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각 개인은 자신만이 가지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한국인 개인의 정체성을 한국의 집단적인 정체성의 기초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탁석산은 말한다.

 



그리고 탁석산은 한국의 정체성이란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

 



"우리가 강대국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선진국이라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별로 없다. 모든 문화를 흡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으므로 자기화된 모든 것을 자신의 것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약소국이다. 또한 문화적으로 후진국이다. 돈 없는 사람에게 돈이 중요하고 무지한 사람에게는 지식이 절실하듯이 약소국이며 후진국인 우리에게는 문화 교류에 미국화되지 않고 자신늘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본문 49-50쪽)

 



이 부분을 읽을 때 의문점이 들었다. 문화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기준이 무엇인지 애매한다. 사실 문화는 문명화된 것과 미개한 문화는 없다. 각자의 문화는 가장 앞선 문화이다. 가장 앞선 문화가 서로 교류하면 발전한다. 한국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후진국, 약소국이기에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의 정체성>은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 독자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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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돈' 이야기

책동네 2017.10.21 05:30 Posted by 耽讀

냉전시대에 대결했지만 공산주의는 스스로 무너졌다. 중국도 정치체제만 공산주의지 경제체제는 이미 자본주의 경제체제다. 돈은 사람을 잡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돈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 했듯이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순간 돈은 주인이며, 사람은 노예가 된다. 돈 없는 세상이 존재할 수 없듯이, 돈의 노예가 된 사람도 이미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에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 돈과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돈' 이야기를 이렇게 한 이유는 이정식·이정욱씨가 지은 <돈을 다루는 사람의 돈 이야기>를 읽고 재미난 돈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한국은행에서 돈을 만들어(?) 공급하는 발권국에서 일한다. 사람의 3대 발명품 중 하나인 '화폐'(나머지 두 개는 불, 수레바퀴)는 사람들이 만들고 싶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오로지 국가 중앙은행만이 만들 수 있다. 국가가 마지막까지 인민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화폐가 사람들에게 통용되기까지 교환의 매개는 쌀, 소금, 포 등등 물물교환이었다. 조개껍데기도 교환 수단이었다. 궁금한 것이 있다. 왜 돈은 국가 중앙은행만 발행할 권한을 가질까? 우리나라는 '한국은행'이다. 요즘 같이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 종이와 잉크만 있으면 찍어내면 될 것 아닌가?


독점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수 있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우리가 돈을 돈이라고 믿고 주고받는 것은, 아무나 돈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기관이 돈을 탄생시켜 그 돈에 대한 가치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19쪽)


그렇다 너 나 할 것 없이 돈을 찍어낸다면 그 돈은 교환가치가 없다. 내가 찍어낸 돈을 가지고 텔레비전을 사려고 할 때 파는 사람은 내가 찍은 낸 돈을 가지고는 그 물건을 팔지 않는다. 물물교환 시절 쌀과 소금을 교환할 때 서로 필요하고 교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찍어 낼 수 있는 돈이라면 돈은 넘친다. 중앙은행도 무조건 찍어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돈을 통하여 국가가 통제하는 것이 기분 나쁜 일이지만 통제 없는 돈 찍어내기는 더 큰 혼란을 야기하여 우리 삶을 더 옥죄일 것이다.


<돈을 다루는 사람의 돈 이야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 많다. '땡전 한 푼도 없다'는 옛말의 유례를 보면 흥미를 자아낸다.


"<푼>은 우리나라에 근대 화폐 즉 신식 화폐가 등장하기 이전에 사용되었던 조선통보 상평통보 등을 일컫는 엽전 한 장을 의미하는 10푼은 1전이며 10전은 1량이 되니 1량이면 100푼이었다. 땡전은 1866년 흥선대흥군이 경복궁 중건을 할 당시 발행했던 <당백전>에 유례를 찾을 수 있다. <당백전>이 <당전>, <땅전>으로 오늘까지 유례된 것을 볼 수 있다." (본문 56쪽)


당백전은 너무 많이 발행되어 실질가치는 상평통보의 5-6배였지만 명목 가치는 20배에 달했다고 한다. 돈 가치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인민의 삶은 피폐해졌고, 오늘 우리가 돈 한 푼 없을 때 '땡전 한 푼' 없다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면 그때나 오늘이나 돈에 대한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다.


가장 재미있었던 내용은 1962년 발행된 100환짜리 지폐였다. 100환 앞면에는 한복 차림의 여인과 초립동 복장을 입은 아이가 저금통장을 펴보면서 웃고 있는 모습이 새겨졌다고 한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지폐를 보면 아주 평면한 인물도안이다. 만원권은 '세종대왕', 오천원권 '이이', 천원권 '이황'과 비교해보면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모자상 도안이 들어간 이유를 들어보자.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 되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초상이 들어가 있는 화폐(100, 500, 1000환권)를 더 발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 71쪽)


독재정권은 독재자를 신격화하기 위하여 화폐도안인물로 많이 사용한다. 이승만 정권도 그랬다.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화폐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었다. 하지만 모자상 화폐 역시 생명이 길지 못했다. 1962년 6월 10일 화폐표시가 '환'에서 '원'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24일 만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화폐도안과 고액권 발행, 화폐 역사, 사상과 이념을 담는 각국 화폐 여행은 매우 재미있다. 책을 읽어가면서 느낀 것은 교환가치로서 '돈'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 수 있지만 종이와 잉크로 만든 '돈'은 재미와 흥미를 한껏 선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돈은 돌고 돈다. 그러니 너무 돈에 인생을 걸지 말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인생이 돈 노예로 살아가는 것보다 나은 인생살이라 생각한다.

'권력'은 언론을 통하여 여론을 조작한다. 언론권력은 인민과 사회를 향하여 '정론직필'보다는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의제를 왜곡하고, 조작하는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스스로 조작한다. 자신들이 비주류일 때는 개혁을 외치지만 주류가 되었을 때 그 '개혁'에 관심이 없다. 주류 언론이 여론을 조작한다고 비판하지만 주류권력에 정착하는 순간 자신들도 여론조작에 일조하는 것이다. 권력이 언론권력을 통하여 여론을 조작하는 모습을 잘 지적한 책이 있다. 노암 촘스키의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1>다. 촘스키가 10년 동안 간담회, 연설회, 세미나 등을 통하여 '세상'의 물음에 답한 내용을 피터 R. 미첼 & 존 쇼펠이 편집했다.

 


미국은 '초권력'이다. 미국은 초권력을 통하여 세계여론을 조작한다. 이 조작에 언론이 동참하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은 전쟁과 파괴 배후에 늘 존재했다. 촘스키가 말한 전쟁과 파괴의 배후에 미국이 참여한 사례를 보자.

 


"1980년대의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미국이 용병국가 mercenary state 라는 매개를 통하여 해외 개입을 시도해습니다. 미국용병국가들의 네트워크는 이스라엘, 타이완, 남아프리카, 대한민국, 그 밖에 세계반공연방에 가입한 국가들, 서반구를 결속시키는 각종 군사단체 등이 있습니다."(본문 29쪽)

 


미국이 용병 네트워크를 구축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정부는 국내 반정부 활동의 압박으로 인해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군사 개입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주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런 네트워크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위험에 노출될 필요도 없고 중간에 일을 방해당할 염려도 없고 괜히 빙둘러서 일을 처러할 필요도 없지요. 레이건 행정부는 과테말라를 지원했지요. 하지만 간접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거기에 이스라엘 고문단을 보내고, 타이완의 대폭동 요원 등을 보냈습니다."(본문 31쪽).

 


미국은 자신들이 세계지배전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비밀정책과 작전, 자신들을 추종하는 나라들을 통하여 지배한다. 이런 것은 조작할 수 있으며 만약 일이 실패하더라도 책임지지 않는다. 거대한 권력과 힘을 통하여 세계 여론을 조작하고 언론권력이 그 조작에 주체 또는 객체가 된다. 촘스키 말을 들어보자.

 


"언론의 움직이는 방식은 대충 이렇습니다. 우선 프로파간다 시스템의 기본 사상을 표현하는 일련의 전제조건들을 작성합니다. 그런 전제조건은 냉전에 관한 것을 수도 있고 경제체제나 '국가안보'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ㄴ다. 언론은 이 전제조건 틀 안에서만 논의를 진행시킵니다. 그리하여 언론의 논의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전제조건을 더욱 강화시키고, 나아가 의견의 스펙트럼은 언론이 이미 짜놓은 그 전제조건뿐인 것처럼 대중들을 세뇌합니다."(본문 47쪽)

 


언론의 이런 여론 조작은 서방 세계에서 3세계와 서방 세계에서도 의제 결정자들이 시민들에게 조작하고 있다. 촘스키는 더 강하게 비판한다. "언론은 늘 찬란히 빛나는 거짓을 일삼는다"고 일갈한다. 언론이 진실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 언론이 보도한 것을 비판한 내용을 보자.

 


"공격자는 미국인들 뿐, 아무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소련, 중국, 북베트남의 군인들은 없었고 오로지 미국 공격자들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점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본문 84쪽)

 


이는 민간인 공격을 말한다. 미군이 공격했지만 미국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정의와 공의, 진실만을 보도해야할 언론은 함구했다.

 


세계는 점점 가난해지고, 제국은 폭력을 행사하고, 자본주의 제국은 흥왕하지만 그것을 진실로 보도하는 곳은 없다. 현대 경제학이 기민과 시장을 왜곡시키지만 언론은 정론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와 이익을 위하여 조작하는 것이다.

 


2017년 대한민국은 어떤가? 권력-정부가 아니라 자본, 학벌, 지연 등 모든 기득권-과 언론권력이 만나 여론을 선도, 조작하여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체제를 더욱 곤고히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주류였던 사람과 언론이 주류에 편입하면서 여론조작을 비판했던 것을 버리고 스스로 그 조작에 동참하는 것이 2017년 대한민국 현실이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는 과거에는 비주류였는데 지금은 주류가 된 모든 이가 읽고 과거를 반추할 필요가 있는 좋은 책이다.

'사람'을 묻는 시험

책동네 2017.09.30 05:30 Posted by 耽讀

대학수능일이 두 달 도 남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일류대학'을 향하여 엄마 뱃속에서부터 영어를 한다. 오로지 '일류대학'을 향하여.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을 '상아탑'이라 했다. '상아탑'(象牙塔)은 '속세를 떠나 조용히 예술을 사랑하는 태도나, 현실 도피적인 학구 태도와 대학 또는 대학 연구실'을 말한다. 오로지 학문을 탐(耽)하여 사람과 사회를 위하여 쓰려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대부분 학생들이 들어가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대학은 '학문을 탐' 하는 곳이 아니라 세속 권력을 쥐고, 돈을 버는 모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학이 들어가려면 학문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기술에 더 관심을 둘 뿐이다. 그 기술은 영어 단어, 수학 공식을 더 잘 외우고, 푸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 오로지 기능주의 교육이다. 기능주의 교육은 단순 간에는 출중한 능력을 가질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학문과 지식에 있어 진보를 이룩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학 미래가 암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학문과 사람을 논하고 알려는 대학과 나라가 있으니 부럽기 한이 없다.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와 그 나라의 '바깔로레아'다. 최병권. 이정옥이 엮은 <세계교양을 읽는다>는 프랑스 바깔로레아에서 출제된 문제와 답을 소개하고 있다.


'인간' 11가지 질문과 답, '인문학' 10가지 질문과 답, '예술' 5가지 질문과 답, '과학' 11가지 질문과 답, '정치와 권리' 16가지 질문과 답, '윤리' 11가지 질문과 답을 읽어가면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경험하는 것과는 상이함을 알았다.


인간 분야의 질문을 살펴보자.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어릴 때부터 행복이 무엇인지, 의식과 무의식이 무엇인지 깊이 사고하지 않았던 답이 매우 어렵다. 한 달 정도 논술 수업을 받는다고 답할 수 없다. 정답은 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답은 논술학원 선생이 만들어준 정답일 뿐, 자신이 경험한 행복과 자신이 사고한 의식과 무의식을 통하여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선생의 정답으로 낸 답안지는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지금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자신의 과거에서 완전히 단절된 개인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기 어렵다면, 현재 순간의 한 주체를 정의하는 데 있어 그의 과거가 지니는 중요성을 평가해야만 한다.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일 뿐인가?" (본문 42쪽)


번역 상 오류인지 몰라도, 고등학교 졸업을 갓 학생이 독해하고, 답하기에는 매우 난감한 질문이다. 이런 답은 이성과 사고의 결과보다는 어쩌면 경험론적인 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무 살도 안 된 학생들이 경험한 자신의 삶이 현재 자신의 전 모습인지 답하기는 경험론적으로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깔로레아'는 답을 요구한다. 이 질문에 답을 한 번 살펴보자.


"'나는 단지 내 과거의 총합이다.'라는 생각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존재는 완전히 미리 결정되어 버린다. 이런 식으로 과거가 현재의 우리를 결정한다는 생각은 과학 법칙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엄격한 인과율의 형태로서 인간의 삶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본문 45쪽)


자연과학 법칙 원인과 결과가 일치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은 하루에도 수없이 변화하며, 인간은 이성과 감성, 의지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에 과거가 현재의 전부일 수는 없으며, 현재가 미래도 아닌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 대학 시험에 '바깔로레아'가 도입된다면 <세계교양을 읽는다>와 같은 책을 논술학원에서 무조건 외워야 할지도 모른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다양한 질문과 답이 있다. 놀라운 질문이며, 답이다. 수학공식, 영어 단어만을 잘 외우면 되는 우리 현실을 통하여 <세계교양을 읽는다>를 만나면 기능주의 공부에 매몰된 아이들의 미래가 암담하다.


바깔로레아가 대학 시험의 표준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바깔로레아의 길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학생들이 부러울 뿐이며,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글들은 우리나라 대학교수들보다 수준 높았다. 바깔로레아는 한 마디로 '사람'을 묻는 시험이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혼'을 담은 우리 조각과 건축

책동네 2017.09.23 05:30 Posted by 耽讀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이 회화와 공예에 관한 우리 최고의 미술품에 관한 책이라면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2>는 조각과 건축이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만났던 작품이 많다. '서산마애삼존불'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 '석굴암 본존여래좌상' '석가탑' '다보탑' '부석사 무량수전'을 비롯한 20가지 우리나라 조각과 건축물을 상세히 설명하고 중국과 일본에서 비슷한 조각물과 건축물을 비교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만났던 작품들이지만 불교 신자가 아니기에 조각품은 대부분 불교작품이라 생소했다. 각 작품을 소개한 교수들의 설명과 눈으로 만난 서산마애삼존불,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석굴암, 석가탑, 다보탑을 더 깊이 만나지 못해 안타까웠다. 조각품을 만났을 때도 미술사적 가치만 아니라 종교심도 큰 역활을 한다는 것을 새삼느꼈다.

 


깊은 만남을 하지는 못했지만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을 설명한 임남수 영남대학교 교수다음 말은 이 조각상 풍기는 멋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은 소년의 통통하면서도 둥근 얼굴, 양손과 발의 자연스러운 살집과 마디 등을 보여주고 있으며, 옷자락에도 천이 만들어내는 질감과 주름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의 상승하는 오른쪽 무릎은, 뚝섬 출토상이나 연가7년명 상에서 신체를 구속하고 있던 좌우대칭이나 이등변삼각형 구도를 시원스럽게 깨뜨리고, 새로운 조형예술의 세계를 열어 보이고 있다. 깨달음의 미소는 작가로서의 성취를 이룬 불사의 희열을 나타낸 것으로도 해석하고 싶다."(본문 51쪽)

 


작가는 반가사유상을 만들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처를 만들고자 함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부처가 되지 않으면 이런 묘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종교심은 이론과 설명보다는 자기가 믿는 종교와 자신이 일치할 때 온전한 신자라 할 수 있다. 반가사유상을 제작한 작가 역시 그 자신이 부처와 하나되었고, 부처로 성불함으로써 깨달음 미소를 조각품에 나타냈을 것이다.

 


스무 가지 조각과 건축물 중에서 나를 가장 이끌었던 것은 '도산서원 도산서당'이었다. 도산서당은 도산서원 내 아래쪽 동편에 있는 작은 건물이다. 퇴계는 도산서당에서 사람을 길렀다.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사람'을 알고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도산서당은 작은 건물이다. 3칸 기본 구조에 우측으로 익첨 1칸을 덧대는, 8평 남짓하다. 8평 공간에서 퇴계는 성리학을 이루었다. 이 시대 학문을 이루기 위하여 집을 크게 짓고, 화려한 것만 추구하는 우리에게 퇴계는 묻고 있는 듯하다. 건물로 학문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퇴계가 도산서당 동쪽 대청 한 칸을 암서헌(巖棲軒), 자신이 거처한 중앙 방 한 칸을 '완락재(玩樂齋)라 했다. 김지민 목포대학교 교수 말을 들어보자.

 


"암서헌이란 '(학문에 대한) 자신감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했다가 이제 바위에 깃들여 조그만 효험이라도 바란다'는 주자의 운곡시에서, 완락재란 역시 주자의 <명당실기>에서 나오는 '좋아서 구경하는 것을 즐ㄹ기는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는 글에서 취해 지은 이름이다. 결론적으로 이 서당은 자연에 최소한만 개입함으로써 큰 우주를 그려낸 퇴계의 맑고 깨끗한 정신이 서려 있는 곳이라 하겠다."(본문 230쪽)

 


건축물 자체는 화려하지 않다. 3칸이 화려하면 얼마나 화려하겠으며, 크면 얼마나 클까? 3칸 작은 집에서 '학문'을 이룬 그가 부러울 수 밖에 없다. 큰 것만, 화려한 것만 좋은 것으로 여기는 범인(凡人)이 깨닫기는 퇴계가 크다. 하지만 퇴계가 크다는 것만 존경할 것이 아니라 작은 3칸 8평 남짓한 좁은 집에서도 성리학 최고 학자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름만 존경하는 것은 퇴계에게 무례한 일인지 모른다. 도산서당이 나에게 답한 귀한 가르침이었다.

 


그 외에 석가탑, 다보탑, 경회루, 담양 소쇄원은 건축 기술이 발달한 오늘도 그 아름다움과 경외스러움을 담지 못할 것이다. 이 시대는 '기술'(技術)은 있지만 '혼'(魂)은 없지 않은가? 옛 시대와 옛 사람이 남긴 조각과 건축물이 오늘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모든 것을 만들을 혼을 담았기 때문이다. 혼을 담은 건축과 조각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2>를 읽어보시라.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인민이 만들어 가는 대한민국 개조

책동네 2017.05.07 05:30 Posted by 耽讀

'유시민'은 극과 극으로 평가를 받는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나는 소위 '유빠'는 아니지만 그를 좋아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를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그가 책에서 말한 철학이 마음에 들었다.


<대한민국 개조론>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대선 출마자들은 출마 선언과 책을 쓰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었다. 유시민도 출마 전에 이 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다른 출마자들과 조금 달랐다. 그는 <대한민국 개조론>에서 자신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비전과 정책을 두고 일할 것인지 말한다. 물론 지금은 대선을 포기했지만.


유시민도 밝혔듯이 <대한민국 개조론>은 보수와 진보에는 달갑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말만 하지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한다. 유시민 글 중 눈에 들어왔던 내용은 한미FTA가 참여정부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FTA에는 박정희 경제체제의 중심인 '수출주도형 불균형성장전략'을 경제발전전략으로 선택함으로 대한민국은 개방경제, 통상국가로 가는 운명을 부여받았다고 하는 주장은 나로서는 처음 듣는 내용이었고 설득력 있었다.


물론 보수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미FTA는 대한민국을 반드시 살리는 길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 유시민 생각이다. 유시민의 이런 주장에 진보진영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 원인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에 근원을 두고 있다. 아직 <민족경제론>을 읽지 못해 이 책에서 담고 있는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박정희식 경제체제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민족경제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국가발전전략으로 만들어 제시한 인물입니다. 농업을 기반으로 각 지역 단위에서 1, 2, 3차 산업이 균형을 이루어 발전해가게 함으로써 국가 전체가 균형잡힌 경제구조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 그가 제시한 전략의 핵심입니다. 경제가 그저 경제가 아니라 사회, 문화의 발전과 조화를 이루면서 성장하게 하자는, 인간 중심, 가치 중심의 경제개발전전략이죠." (본문 36쪽)


어떤 경제체제보다 좋은 경제론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이를 거부하고 수출주도형 불균형성장전략을 택했고. 대한민국은 박정희식 경제체제를 40년 이상 지속했기 때문에 그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시민 생각이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아직도 박현채식 경제체제를 염두에 두고 FTA를 반대하고 있는데 이는 '안티'일 뿐 대안은 될 수 없다고 유시민은 일갈한다. 나 역시 FTA는 반대하지만 반대할 경우 그 대안은 아직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른다. 진보진영 역시 그 대안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 유시민이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FTA가 진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확신은 분명하다.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어떻게 가야 할까?


참여정부가 내놓은 대한민국 장기발전전략인 '비전2030'에서 찾고 있다. 비전2030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선도적 세계화, 개방화와 지식정보화를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세계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선도함으로써 더 큰 경제적 번영의 기회로 삼는다.


둘째, 인적자원개발. 지구촌을 무대로 경쟁하는 주체는 물질이 아니라 사람이다. 일하는 동안 더욱 생산적으로 일해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 자본 확충. 사회적 자본은 개인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자원이다." (본문 58-60족)


세계화가 피할 수 없고, FTA로 가는 길이 외길이라면 대한민국은 이를 대비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며, 그 대안으로 사람이 배우는 일에 국가가 적극 지원하고, 평등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며, 개인보다 사회적인 자본을 확충하는 일에 전력해야 함을 유시민은 강조하고 있다. 이른바 성장주의와 낡은 복지국가론을 넘어 사회투자국가로 가야만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는 생각을 유시민을 하고 있다.


보수진영은 유시민이 제시한 정책을 "좌파 포퓰리즘"이라 비난하고,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에 굴복"했다고 비난한다. 정말 유시민이 제시하는 국가발전전략이 이토록 비판받을 만한가? 둘 다 옳을 수 있지만 그들 주장 면면을 들여다 보면 '말'은 하지만 '책임 있는 대안'은 사실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유시민이 제시한 '의료급여제도'는 비판받을 만한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정과 보완을 거쳐 그렇게 가야만 한다.


대한민국은 선진통상국가와 복지국가의 좋은 점을 택하여 사회투자국가로 가야 할 중요한 기로서 섰다. 세계화는 인민생활을 피폐하게 하는 주범이지만 우리만 거부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더라도 세계화 본류를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세계화 본류에만 대한민국을 맡긴다면 소외와 가난한 인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인민을 위한 세계화와 개방화가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야 한다. 즉 사람이 중심이고, 희망이 대안을 세계화 흐름 속에서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길이 대한민국 개조다. 그 중심에 인민이 서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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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

책동네 2017.04.30 05:30 Posted by 耽讀


초등학교 이후로 미술 시간, 음악 시간은 고역이었다. 예술적 재능은 천부적이라 했는데 부모님께서 나에게 예술적인 재능은 전혀 물려주지 않았던 것 같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이런 재능은 물려주지 못했다. 물론 그림과 예술품을 읽는 재능도 별로 없다. 고흐, 피카소, 바흐, 모짜르트, 김정희, 안평대군, 한석봉의 그림과 음악, 서예를 아무리 보고도 왜 그 작품이 위대한 예술품인지 잘 몰라 예술작품들을 설명한 책들을 한 번씩 사본다. 하지만 그들의 설명도 알쏭달쏭하다. 그리고 너무 어렵다. 이런 와중에 '돌베게'에서 나온 강경숙 외 17명이 지은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를 만났다.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에는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40점을 소개하면서 중국과 일본의 미술품과 비교한다. '회화'는 김홍도, 정선, 윤두서, 김정희, 조속, 안견과 고구려 고분 벽화, 민화, 궁중장병화, 불화 등이다. '공예'는 도기, 청자, 백자 등 도자 공예품, 목공예, 금속 공예, 문양전 등이다. '불교조각'은 석조불, 금동불, 철불, 소조불, 마애불, 목각탱, 목불 등이다. '건축'은 궁궐건축, 사원 건축, 서원건축, 사원건축, 조경문화, 석탑, 석교 등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 미술사에 최고의 작품을 선정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학자에 따라 의견을 달리할 수 있지만 이 책에 선별된 작품을 폄하할 수 없다. 40개 작품 중에서 몇 작품을 소개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논란이 되면서 고구려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고구려 역사와 문화에 문외하다. 민족주의에 바탕한 감정주의는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소재한 고구려 벽화 '무용총 수렵도'를 통하여 고구려를 알아보자. 전호태 울산대학교 교수는 무용총 벽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5세기 전반경의 작품으로 여겨지는 무용총의 <수렵도>는, 당시까지도 고구려에서는 새로운 예술 장르로 여겨지던 벽화 형식으로 드러난 고구려식 회화의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무용총 벽화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얼굴 선이 깔끔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고구려인 특유의 얼굴을 지녔으며, 왼쪽 여밈과 가장자리 선을 특징으로 하는 고유의 옷차림을 했다. 자연스러우면서 강하게 뻗어나가는 필선, 제한된 표현 대상을 중심으로 화면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방식."(본문 29쪽 인용)

 


 


군사력만 강했다고 생각한 우리 의식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수렵도>에 대한 평가다. 고구려는 예술 세계에서도 중국에 뒤쳐지지 않았다. 그들만의 색체와 필력, 예술성을 바탕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 내세를 믿었고, 그것을 벽화에 담았다. 고구려는 벽화를 통하여 자신들의 문화와 사회 전반을 담았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으로 들어가보자. 위대한 미술품은 어쩌면 인민을 담는 것이 아닐까? 상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민 그 자체를 담는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 인민의 일상적 삶을 담은 것을 '풍속화'라 한다. 풍속화는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삶이 우주와 종말을 다할 때까지 존속하는 유일한 그림으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원 김홍도는 풍속화를 대가다. 그가 그린 작품 중 <빨래터> <타작> <서당> <기와이기>는 우리 눈에 익숙한 작품들이다. 정병모 경주대학교 교수가 설명한 <빨래터와 <타작>을 감상해보자.

 


 


"<빨래터>를 보면, 점잖은 양반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바위 뒤에 숨어 빨래하는 아낙들을 훔쳐보고 있다. 까닥하면 망신당하기 십상인 그림 속 양반처럼, 김홍도 역시 천박하다고 비난받을 만한 주제를 자신의 작품 속으로 과감하게 끌어들였다. <타작>에서는 벼 낟알을 털기에 여념이 없는 일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고된 노동을 감내하고 있지만, 이를 감독하는 마름은 술에 취해 아여 비스듬히 누워버렸다. 상류 계층인 마름과 하류 계층인 일꾼들의 불공평한 관계를 유머스럽게 풍자했다."(본문97쪽)

 


 


<빨래터> 풍경은 천박함을 통하여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표현한다. 양반과 인민이 다르지 않다. 본능에서 신분차이는 없다. 김홍도는 인간의 본능을 그리면서 계급과 신분제를 비판한 것은 아닐까? 섣부른 생각이지만 나는 <빨래터>를 그렇게 읽고,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인간 본능은 천박하지 않으며, 인민과 양반은 본능 안에서 서로가 하나임을 그는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물론 훔쳐보는 양반이 자신의 허벅다리를 드러내고 빨래하는 아낙보다 어쩌면 신분에서는 상위이지만 본능을 드러내는 입장에서는 하위임을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작>은 양반의 천박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놀고 먹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천박하고, 일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노동 자체는 고귀하다. 노동을 천박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의 의식이 더 천박한 것임을 <타작>은 말하고 있다. 노동은 가치 있다. 노동이 억압으로 작용하지 않고, 노동 자체를 기뻐하고, 귀하에 여기다면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한국의 미, 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은 이렇게 많은 작품을 통하여 우리를 예술세계로 인도한다. 예술세계는 사람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매우 밀접하다. 사람과 밀접하지 않는 예술품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사람과 함께 하는, 특히 인민과 함께 하는 예술품인 민속화는 더욱더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전기가 없다면...

책동네 2017.04.23 05:30 Posted by 耽讀

이것이 없다면 나는 오늘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없다. 인터넷에 댓글을 남길 수 없다. 국정원 직원들이 댓글을 당연히 달 수 없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물 한 컵을 마실 수 없다. 월드컵 축구 경기를 텔레비전을 통하여 볼 수 없다.


'이것은'은 무엇일까? '전기'다. 사람은 가장 가치있는 것을 가장 가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예를 들면 '물', '공기'다. 이것은 사람이 만들 수 없는 것들이다. 사람인 만든 것 중에 우리나라 같은 경우 너무 흔하여 귀한 줄 모르는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전기가 아닐까?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전깃불을 처음 만났다. 신기함 그 자체였다. 한없이 쓸 수 있는 전기지만 우리는 전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아간다. 과연 이 전기가 인류에게 처음 다가온 때는 언제쯤일까? '데이비드 보더니스'가 지은 <일렉트릭 유니버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과학에 무능한 사람이 이 책을 읽기에는 부담되었다. 과학과 경제, 철학 책들을 내는 사람들이 요즘 하는 말은 '쉽게' 썼다고 한다. 하지만 비전문가와 학생 시절 공부하기 싫었던 사람들이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 <일렉트릭 유니버스>도 마찬가지다. 전기가 인류에게 다가와까지 연구와 실험을 통하여 발명을 한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전보를 탄생시킨 조지프 핸리와 새뮤얼 모리스가 있다. 전보의 발명은 혁명을 이룬다. 전보가 생기전 전 세상은 어땠을까?


"두 도시 사이에 소식을 전하던 마부는 무게가 450킬로그램도 넘게 나갈 동물을 바위와, 바퀴자국 깊은 진흙투성이 길과, 때때로 쓰러져 있는 나뭇가지 위로 몰아야만 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19세기 초에 정보가 전해지는 속도는 고대 수메르인들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본문 40쪽)


하지만 전보가 발명된 후 세상은, 세상을 강타했다. 금융업 내부자 거래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 등장했다. 멀리 떨어진 사무실도 연결할 수 있었고, 철도망도 복잡해졌다. 시간의 통합도 가능해졌다.


등장인물 중 가장 가슴에 와 닿은 사람이 있다. '하인리히 헤르츠'다. 그는 '고독한 과학자'였다. 데이비드 모더니는 헤르츠의 일기와 편지, 연설을 통하여 발명과정을 설명한다. 실험과 연구만한 과학자였다. 1889년 3월 17일 일기 "미친 듯이 계산만 했음." 헤르츠의 ‘논문모음집’에 쓴 윌리엄 톰슨의 서문.


"패러데이가 최초로 힘의 곡선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 물리수학자들을 화나게 한 이래 많은 시간이 흘렀고, 수많은 실험가와 이론가들이 등장하여 19세기 물리학의 형성에 기여했다. 그리로 19세기 끝 무렵에 세상에 발표된 헤르츠의 전기에 대한 논문들은 영원한 금자탐을 남을 것이다." (본문 141쪽)


헤르츠는 열정을 연구했다. 그는 병들어갔고, 폐혈증으로 죽음에 이른다. 고독과 싸우면서 전자기선만을 생각했다. 그는 우리 의식 너머에 있는 실제 사물의 존재를 알고 싶어했다. 우리와 바깥세계 사이에는 감각이라는 협소한 완충지대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협소하지만 이는 철저히 탐구할 때만 가능하다고 했다. 과학자가 간 길이 이런 길 아닐까?


그렇다. 전기를 통한 발명과 발견은 고독과 싸움이다. 인내와 싸움이다. 나와 싸움이다. 이 인고의 과정을 통하여 잉태한 결과물들을 우리는 받아먹고 있지만 그들을 향한 고마움의 표는 전혀 없다.


1942년 앨런 튜링은 생각하는 기계를 고안한다. 바로 컴퓨터이다. 고마움을 표하자! 이제 컴퓨터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산골에 살더라도 컴퓨터가 아니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이는 앨런 튜링의 수고한 결과이다.


<일랙트릭 유니버스>에는 레이더, 컴퓨터, 신경세포의 비밀을 풀기 위한 힘쓴 이들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과학 세계를 소설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지프 핸리, 새뮤얼 모리스, 벨, 마이클 패러데이, 하인리히 헤르츠, 왓슨 와트, 앨런 튜링, 앨런 호지킨, 오토 뢰비 등을 통하여 전기가 발명과 혁신 과정을 통하여 인류에게 어떻게 다가왔고, 그들이 선물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힘들었고, 빈약했지만 '실험'과 '연구'를 통하여 위대한 전기발명을 이루었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