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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경제

2015.09.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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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짜고 좋은 대통령이었는데"

사는이야기 2015.05.23 07:00 Posted by 耽讀

 

2009년 5월23일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2009년 5월23일도 토요일이었는데 오늘도 토요일입니다.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 썼던 글 한편입니다.

 

 

오늘(2009년 5월23일) 마늘 뽑기 위해 어머니 집에 갔다 시간이 조금있어 동생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병원 입원"이라는 속보가 떴습니다. 조금 후 "노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과 "심폐소생술"이 연이어 떴습니다. 그 때까지만해도 설마했습니다. 하지만 곧 "노 전 대통령 서거"자막을 보면서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노사모처럼 내 시간과 돈을 내면서까지 열렬한 지지를 보내지 않았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마음으로 지지했습니다. 집권 후 대북송금 특검과 이라크 파병, 한미FTA 때문에 강하게 비판했지만 그를 진정 사랑했기에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에 나 뿐만 아니라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동생도 '아' 하는 탄식을 했습니다. 바깥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던 아내에게 뛰어가 말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아내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조카가 자기 엄마에게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전하지 제수씨는 거짓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어머니께도 알렸습니다. 어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습니다.

 

"어머니 노무현 전 대통령 돌아가셨대요."
"뭐라고 누가 죽었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대요!"

"우짜꼬! 우짜꼬! 좋은 대통령이었는데. 우째서 죽었노."

"바위에서 스스로 뛰어 내렸어요."

"스스로 죽었다고 하지만 죽은기 아이라 죽인기다. 나쁜 놈들"

 

어머니는 경상도 토박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찍었습니다. 2003년 탄핵 때는 "망할 놈들 대통령을 끌어 내리노. 자기들은 더 나쁜 놈들이면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진짜 나쁜 놈들은 국회의원들이다"고 분노하면서 전화를 하셨던 분입니다.

 

"노 대통령 집사람은 어떻게 되겠노."
"쓰러졌대요."
"하모 남편이 죽었는데 마누라가 온전한 정신이겠나. 그래도 마음을 잡아야 한다. 우짜꼬 우짜꼬 좋은 대통령.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데 그런 사람을 못잡아 먹어서 그리 난리를 쳤으니 사람이 견딜 수 있었겠나."

 

속보를 보면서 가족들은 한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마음이 아픕니다. 답답합니다. 막힙니다. 그는 다시 올 수 없는 길로 갔습니다. 그가 남긴 일들이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역사는 평가해줄 것입니다. 권양숙 여사와 가족에게 위로를 드립니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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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번이나 맞선을 봤다면 그 남자는 ‘볼 것 없는 남자’다. 하지만 볼 것 없는 남자를 구해준 구세주가 나타났다. 볼 것 있고, 배움 있고, 괜찮은 직장을 둔 여성이다. “자기 눈에 안경”이란 말처럼 아가씨가 한 눈에 반한 이유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볼 것 없는 남자가 찬 손목시계 가죽 줄 이다. 가죽 줄과 손목 사이에 조금 벌어진 틈이 그렇게 멋졌단다. 참 구제 받는 이유도 다양하다.

 

이 아가씨 참 대단함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만난 지 두 번 만에 자신은 허리가 약해 아기를 낳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를 쑥쑥 잘 낳았다. 무려 셋이다. 그것도 자연분만이다. 이쯤 되면 볼 것 없는 남자와 혼인하지 않기 위해 거짓말(?)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지난 16년 동안 변함없이 이 못난 남편을 사랑하고 사랑한다.

 

아내는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산통을 12시간이나 하고 있는데 아침밥을 차려달라고 했다. 다른 아내 같았으면 머리카락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분노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시댁에서 산후조리를 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은 편지를 보냈다.

 

“꿈속에서 당신을 만났어요. 당신은 나타나지 않고 사진만 보면서 당신을 향한 그리운 마음만 애태웠어요., “당신은 저로 하여금 사랑의 눈물을 자주 흘리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 아세요. 저 얼굴 부었어요. 당신 빨리 만나고 싶고 같이 있고 싶어요.

 

이런 아내에게 못난 남편은 “긴 머리를 묶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는 당신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하얀 피부를 통하여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하는 당신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해맑은 목소리로 사랑을 표현하는 당신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고 답장을 보냈다.

 

일주일에 두 번씩 주고받는 편지는 남편을 향한 그리움을 달래지 못했다. 결국 보름만에 아내는 남편 곁으로 왔다. 밤잠을 설치면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서도 옆에 남편이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습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고맙다고 해야 할 사람은 나다. 고마움은 말이 아니라 삶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결심을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내 생일상은 내가 차려줄 것이라고. 16년 동안 이 결심은 지켜지고 있다.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는 것만 아니라 생일상을 받는 아내 얼굴은 함박웃음이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생일상이다.

 

“여보 고마워요.
“별 것 아닌데 뭘요.
“아니에요. 당신이 차려준 생일상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과 비교할 수 없어요. 맛있게 먹을게요.

“아니에요. 당신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 나는 기뻐요. 맛있게 먹어주어 고맙습니다.

 

16년 동안 이어온 아내 생일상을 차려주는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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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막둥이. 눕는 순간 잠들어 버립니다. 길면 1분입니다. 정말 행복한 아이입니다. 올해 12살로 초등학교 5학년인 막둥이는 11일이 시험인데도 학교 다녀 온 후 문제집 한 번 풀고 그냥 쭉 놀다가 잡니다. 엄마는 타박이지만 막둥이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아이의 잠자는 모습만 봐도 마냥 행복합니다. 그런데 지난 7일 밤 이 녀석이 잠자는 모습을 보다가 오른손 새끼손가락 손톱에 발린 분홍빛깔 매니큐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막둥이 새끼손가락에 왠 매니큐어예요? 당신은 매니큐어 바르지 않잖아요."
"여자 친구가 해주었대요?"

"여자 친구? 그 참 신기하네. 아빠 첫사랑은 엄마인데. 이 녀석은 벌써 여자 친구를 사귄단 말이에요?"
"당신도 참, 그런 여자 친구가 아니고. 자기 반 여자 아이가 칠한 거예요."

 

그런 여자 친구가 아니라는 아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매니큐어를 가져와 남학생 손가락에 칠해주는 여자 아이나 칠한다고 마냥 좋아하는 막둥이나 정말 귀엽고, 예쁩니다.

 

12살 막둥이의 편지, "제 꿈에 대한 희망이 있을거예요"

 

어린이날은 잘도 챙기면서 어버이날은 모른 척하고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학교 다녀온 막둥이가 편지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막둥이 글을 볼 때마다 감동입니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 한글을 다 깨우치지 못하고 들어갔는데 이제는 편지를 씁니다. 그것도 아주 감동입니다.

 

부모님께

어머니 아버지 저 체헌이예요.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부모님 말씀을 안 들을 때마다, 속상하시죠.

이제부터 말씀을 잘 들을게요.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꿈을 향해 열심히 뛰어 갈 수 있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될게요.

그리고 엄마는 제가 축구선수가 되는 것을 반대하지만 저는 꼭 축구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를 경찰대학에 가라 하지 마세요.

저는 제 꿈에 대한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랑해요.

2012년 5월 7일

체헌 올림

 

정말 감동 먹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꿈을 향해 열심히 뛰어 갈 수 있는 마음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 이런 문장력이 막둥이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 꿈에 대한 희망이 있을 것이라는 글귀를 보면서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어버이날, 힘든 엄마를 위해 빨래하는 막둥이

 

편지 한 장으로 자기 할 일을 다 한 막둥이. 이번엔 자기 빨랫감을 꺼내더니 직접 빨래를 합니다. 수건도 빨고, 자기 양말도 빨았습니다. 형과 누나는 어림도 없는 일을 막둥이가 힘들어 하는 엄마를 위해 직접 나선 것입니다. 막내는 어느 집에서나 귀염둥이입니다. 모든 사랑을 다 받지요. 더군다나 이런 막둥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막둥아! 네 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1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11.3%를 넘어섰고, 2026년에는 20%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2060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인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1%에 이른다고 합니다. 40년 후에는 넷 중 한 사람인 노인입니다. 

 

65세가 노인이라면 저 역시 18년 후에는 노인이 됩니다. 어른들은 "나이는 못 속인다. 너도 나이 들어봐라 늙은 사람들 마음 이해할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하셨는데 그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3일) 아내와 함께 한 공원에 갔는데 세 부류의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한 분은 몇년 전 할머니를 먼저 보낸 할아버지였고, 한 부류는 비가 오락가락는데 열심히 일을 하는 몇 분 어르신들이었고, 또 다른 분들 일하는 분들 옆에서 게이트 볼을 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대낮부터 낯술을 하셨는지 말이 오락가락했습니다. 할아버가 하신 말씀은 이랬습니다.
 
젊었을 때 군 생활을 카튜사에서 했어 무술 실력도 뛰어나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는 나를 이길만한 사람이 없다. 내 주먹 하나에 생명의 위태로움을 당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셨다. 청와대 보좌관을 하는 친척이 있다. 진주, 산청, 사천 지역유지를 잘 알고 있다. 하루 6만 원은 쓴다. 소주 1병 막걸리 1병과 안주로 족발을 포장하여 함께 마실 친구를 찾아 다닌다. 경찰이 술을 마시고 이 차를 운전하면 잡는다,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
 
할머니를 먼저 보내고 적적함을 이기지 못해 술을 많이 드시는 것 같았습니다. 오토바이를 개조해 타고 다녔는데 사고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이지만 어쩌면 젊었을 때 사람이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을 한 잔 술에 젊은 부부를 앞에 두고 하나씩 풀어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 켠이 아팠습니다.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는데 할머니들 몇 분이 풀을 메고 있었습니다. 방금까지 뙤약볕이 내리 쬐었는데 비가 오락가락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다행입니다. 할머니들은 별 말씀 없이 풀만 맵니다. 아마 공공근로이거나 희망근로를 하는 분들로 보였습니다.
 

 
집에 가만 있는 것보다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일을 하시는 것이 건강에도 더 좋습니다. 시골에 사는 분들이 도시 자녀들 집에 갔다가 하룻밤 자고 집에 가겠다고 히시는 이유는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용돈도 벌겸 건강에도 좋은 일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어르신들에게는 좋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바로 그 옆에는 게이트볼을 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계셨습니다. 한쪽은 일하고, 한쪽은 게이트 볼을 하는 묘한 광경이었습니다. 게이트 볼을 하는 어르신들은 그래도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일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건강에 좋지만 풀을 매는 분들은 직접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가 힘듭니다. 건강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일하십니다. 옆에는 건강을 위해 게이트 볼을 하고, 한쪽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하시고, 한 분은 낮술로 오락가락한 말씀을 하시고. 작은 공원에서 대한민국 어르신들의 양극화를 지켜보면서 씁쓸했습니다.

위블 베스트 리뷰어

"아빠, 오늘은 어디로 갈 거예요?"

"어린이날이니….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야지."

"예술회관 앞에 있는 남강 둔치에 가요. 거기가 더 재미있어요."

 

우리 집에서 유일한 어린이(?) 막둥이가 아침부터 바쁩니다. 물론 중학생인 큰 아이와 둘째도 정신 연령은 어린이지만 나이는 청소년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날 모든 선택은 막둥이에게 있습니다. 막둥이가 선택한 남강 둔치로 모두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뙤약볕 아래 3시간 동안 고생

 

남들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온 줄 알았는데, 벌써 사람들이 한 가득입니다. 무엇보다 날씨가 더운 여름입니다. 구름도 없는 하늘 아래 그늘조차 없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막둥이 한 사람을 위해 네 사람이 뙤약볕 아래서 무려 3시간이나 고생했습니다.

 

 

 

 

중국기예단 공연으로 어린이날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사람이 통 안으로 몸이 들어갔습니다. 유연성이 나무토막인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여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어요?"

"놀라워요. 나도 유연성 하나는 있는데, 상상이 안 가요."
"나무 토막인 나는 어떻겠어요?"

 

"사람이 '통' 안으로 들어갔어요"

 

중국기예단은 또 다른 유연성을 보여주었는데 촛대를 들고, 몸을 거의 동그라미로 만들었습니다. 원래는 촛불을 켜야 하는 데 낮이고, 바람이 조금 불어 촛불을 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몸놀림 하나하나에 지켜보는 모두가 '와'라는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연성만 아니라 의자를 다섯 개 쌓은 후 막대기 위에 사람이 올라갔습니다. 유연성과 탁월한 균형감각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람이 불면 안 되는데…."
"바람이 불면 큰일 나지요. 의자도 그렇지만 막대기 위에 사람이 물구나무를 섰어요."
"사람이 어떻게 저런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어요. 조금만 흔들리면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상상을 초월하는 기예 앞에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얼마나 가혹한 훈련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묘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한 훈련을 받았을 것입니다. 특히 유연성은 어릴 적부터 훈련받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전거가 사람 4명 위로 날랐어요"

 

중국 기예단 공연이 끝나고, 자전거 묘기가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통해 다양한 묘기를 보여주었는데 그 중 하나가 누워있는 4명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단 한 번 실수로 사람이 다칠 수 있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자전거 묘기를 보여주기 위해 이분들 역시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 도중 다친 사람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누워있는 사람과 호흡이 맞아야 합니다. 누워있는 사람이 자전거가 무서워 조금이라도 빨리 일어나면 크게 다칩니다. 자전거 묘기를 보여주는 사람 역시 순간 판단력, 유연성, 기술만 아니라 담대함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두려워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모두가 다칠 수밖에 없습니다.

 

배고픈 막둥이, 억지로 7미터 미끄럼틀 태워

 

중국기예단 자전거 묘기에 환호했지만, 햇볕이 강했습니다. 들어 올 때부터 반드시 타겠다고 봐 두었던 7미터 높이 미끄럼틀을 타러 갔습니다. 그런데 막둥이가 시무룩합니다.

 

"아빠, 저것 타지 말고, 밥 먹으러 가요."
"한 번 타보자.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으니까. 타고 나서 밥 먹으러 가자. 저런 것 보면 타겠다고 조르는 네가 오늘은 웬일이니?"
"아빠, 그럼 저것만 타고 밥 먹어요."

"그럼, 아빠도 배고프다."

 

 

 

타기 싫다고 했던 막둥이는 타 보더니 싫은 모습은 아닙니다. 한순간 내려오는 모습이 짜릿했습니다. 유일한 어린이 막둥이를 위해 네 식구가 뙤약볕 아래에서 고생했지만, 모두가 즐거웠습니다. 막둥이가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하길 바랍니다. 또 자신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길 간절히 바랍니다.

성냥으로 폭탄을 만들어?

사는이야기 2012.05.06 14:56 Posted by 耽讀

"동수야! 폭탄 한 번 만들어보자."

"뭐? 폭탄!"

"응."

 

동무 창용이는 과학자가 꿈이었다. 특히 그는 무엇이든지 잘 만들었다. 손재주가 많았다. 나는 아무리 정성을 다하여 힘들게 만들었지만 결국 허탕이었다. 과학자의 꿈을 가지고 있는 창용이의 손재주를 칭찬했지만 문제는 과학자가 되려면 물리와 생물, 화학, 수학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창용이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물건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부가 중요하다고 해도 마이동풍이었다.

 

"폭탄 만들자!"

 

"창용아! 폭탄을 만든다고? 어떻게 만드는데? 폭탄은 군인들이 만드는 거야. 네가 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폭탄은 폭약과 뇌관, 쇳덩어리가 있어야 한다."

"그럴 필요 없어 간단해. 성냥, 심지만 있으면 된다."

"뭐 성냥과 심지? 그것 가지고 폭탄을 어떻게 만드는데? 너 엉뚱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엉뚱하다. 세상에 누가 성냥과 심지만으로 폭탄을 만드니.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엉뚱한 것 알지만 네가 한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창용이는 요지부동이다. 창용이다운 생각이지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야릇한 생각도 들었다. '만들기 대장인 창용이 아닌가? 진짜로 만들 수 있다면 대박이다. 그럼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럴지라도 창용이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쉬 가시지를 않았다.

 

"창용아! 거짓말 하지 마. 무엇이든지 잘 만들지만 아무래도 폭탄을 아니야. 너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야."

"동수야! 너는 보기만 해. 내가 성냥과 심지만으로 폭탄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줄게. 너는 준비만 하면 된다. 우리 집은 엄마와 아빠가 혼낼 수 있으니까? 어디가 좋을까? 그래 너희 집에 가자. 너희 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들이니까? 아마 내가 폭탄을 만들면 좋아 하실 거야."

"그래 알았다. 네가 만들지 못하는 것이 어디 있니. 나중에는 비행기도 만들겠다. 과학자가 되려면 물리, 생물, 화화 공부를 해야지. 너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야 임마. 과학 공부도 좋지만 무조건 만들어보는 것도 중요해. 만날 책상에 앉아서 실험만 하는 사람치고 과학자다운 사람은 보지 못했다. 훌륭한 과학자들을 살펴보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실험을 했는지 몰라, 실험하다가 다치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있더라."

 

그래도 한 번 더 창용이를 설득하기로 했다.

 

"뭐 무조건 만들어 본다고? 창용아! 만드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원리가 중요하다. 원리를 모르고 어떻게 만드니. 그래 다친 사람, 죽은 사람도 있지만 너 같이 성냥하고 심지만으로 폭탄을 만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네가 무조건 만들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지만 폭탄은 아니다. 그냥 우리 집에 가서 놀자. 응! 엉뚱한 생각 좀 하지 말고."

 

창용이는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이런 식이다. 창용이는 무조건 만들어 보고, 나는 원리를 알아야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원리와 방법이 일체가 되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아닌가? 그때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 창용이의 말이 맞는지 모른다. 책상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다 해놓은 방법 가지고 실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나름의 방법대로 연구하여 좋은 결과를 내 놓은 과학자가 진정한 과학자가 아닐까?

 

창용이는 막무가내 과학자 "무조건 만들어 보자"

 

"우리 집에 간다고 이 번 주 토요일에 집에 가자."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하였다. 토요일이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다. 창용이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한 번씩 집에 갔다. 토요일 창용이와 함께 시골집에 가서 노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 어머니가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놀러왔다.

 

시골집은 작은 언덕 산 밑에 있었다. 키 큰 소나무와 잔디가 함께 어루어진 아름다운 곳이다. 축구게임도 하고 겨울에는 눈 썰매를 타기도 하였다. 비스듬하게 생겼다고 해서 '비슨등'이라고 불렀다. 요즘 아이들은 참 불쌍하다. 이런 터가 있어도 놀지를 못한다.

 

이른 봄이라 날씨는 쌀쌀하였다. 잔디는 누른빛이다. 이른 봄 바람은 짧고 강하게 분다. 회오리 바람이 부는 경우도 있다. 이른 봄 쌀쌀함을 잊고 우리는 폭탄 제조에 들어갔다. 쌀쌀함이 창용이의 의지를 꺾지 못했고, 바람이 의지를 꺾지 못했다. 우리는 이 짧고 강한 봄바람이 무엇을 예고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창용이의 폭탄 제조법은 간단하였다. 성냥에서 화약을 떼어 내었다. 능숙한 솜씨다. 아니 능숙한 솜씨가 아니라 폭탄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면 배꼽잡고 웃을 일이지만 창용이는 진지하였다. 창용이 표 폭탄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창용아! 이것이 어떻게 폭탄이 되는 것이야? 이것은 폭탄이 아니야, 화약이다. 하하하. 불을 붙겠니. 불이 붙어다고 하자 그럼 터질 것 같아. 뇌관도 없고, 파편도 없는 이것을 폭탄이라고. 하하하."

 

웃음이 절로 나왔다. 배꼽을 잡고 웃을 정도였다.

 

"응. 폭탄이야. 분명 폭발할 거야. 너는 보기만 해라. 창용이 표 폭탄. 너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내가 얼마나 많은 연구를 했는지 아니?"

 

창용이는 성냥에서 떼어낸 화약에 불을 붙였다. 심지에 불이 타 들어갔다. 화약에 불이 붙었다. 정말 신기하였다. 창용이의 눈에는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나타났다. 14살 중학생이 폭탄을 스스로 만들어 성공을 앞두고 있었다.

 

"창용아? 성냥에 불이 붙었다. 너 대단하다."

"그래 인마 내가 뭐랬니. 할 수 있다고 했지 폭탄을 어려운 것이 아니냐. 사람이 다치지 않지만 폭발하는 것 보라구. 나는 이제 성냥으로 폭탄을 만든 첫 사람이 될 거야. 앞으로 많은 것을 만들 수 있어. 폭탄도 만들었는데 다른 것을 만들지 못하겠어?"

 

그랬다. 화약은 탁탁 튀면서 불꽃을 뿜기 시작했다. 터질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 14살 중학생들이 보기에 그것은 분명 폭탄이었다. 아니라고 말해도 우리는 믿었다. 아니 확신했다. 눈 앞에 폭탄이 폭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용이가 자랑스럽게 여겨졌고, 앞으로 자랑스러운 과학자가 되기를 바랐다.

 

불이 붙었는데 그만 두라고?

 

그 때 바람이 불었다. 순간적으로 잔디에 붙었다. 나는 꺼려했다. 급했다. 겁이 났다. 어릴 때가 생각났다. 어릴 때 조카와 함께 불을 가지고 놀다가 마구간을 태워 먹은 적이 있었다. 불현듯 그 때의 일이 머리를 스쳤다. 아직도 그 때 생각이 생생하다. 부모님과 이웃 사람들의 아우성이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야 그냥 나두어라!"

"뭐 그냥 두라고? 창용아 바람 분다. 지금 안 끄면 불 난다 말이야."

"그냥 둬!"

"뭐라고 창용이 너 정신이 있는 거야. 불을 꺼야지 불을 끄지 말라고?"

"그래. 내가 만든 첫 열매다. 그냥 두라고 조금 후에 끄면 되잖아. 조금 있으면 바람 불지 않을 거야."

 

하지만 창용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바람을 타고 불은 작은 언덕 산을 태우기 시작하였다. 잔디에 붙은 불은 '탁' '탁' 불똥을 튀면서 날뛰기 시작하였다. '탁' '탁' 튀는 불똥 소리는 우리의 마음을 더 급하게 하였다. 발로 불을 끄기를 수십 번, 소나무 가지를 끊어 끄기를 수십 번,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불은 이미 언덕 산 절반을 태우고 있었다. 불은 회오리가 되었다. 불이 날아다닌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불이 날아 다녔다. 불은 우리 손을 떠났다. 중학생 두 사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작은 언덕산이 타 들어가는 것을 어른들이 보신 모양이다. 어른들의 손길을 빨랐고, 정확했다. 불은 잡혔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작은 언덕산은 자기의 속살을 다 드러내고 검게 타버린 모습으로 창용이와 나를 향하여 울부짖고 있었다. 어른들의 눈길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작은 언덕 산의 타들어간 속살이었다. 작은 언덕산은 말하고 있었다.

 

'사람의 작은 욕심이 우리에게는 큰 상처가 되는 것이야! 알겠니. 우리가 회복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려. 어른이 되었을 때에 오늘을 기억하면서 창용이와 네가 친구이듯이 우리를 사랑해주기를 원한다.'

 

작은 언덕산은 나의 놀이터였다. 봄날 새싹이 쏟아나고, 친구들과 뒹굴면서 놀았지만 고마움을 몰랐다. 생명이 얼마나 귀중한지 몰랐다. 하지만 검게 타 속살을 보면서 나의 놀이터를 생명의 땅을 해하였다는 아픔이 마음에 전달되었다.

 

사람은 작은 경험일지라도 자기의 인생을 바꿀 수있다. 14살의 어린 생각이 생명을 해하였지만 33년이 지난 오늘 작은 언덕산은 또 다른 생명이 잉태되어, 그 생명을 발하고 있다. 사람의 욕심이 새 생명의 잉태의 아픔을 낳게 하였지만 나 스스로에게 주는 생명의 사랑을 선물하였다.

 

33년이 지난 작은 언덕산, 파릇파릇한 생명 잉태

 

33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에게 말한다. 생명을 해하는 일을 하지 말라. 가스밸브를 잠그라. 젖은 손으로 전기기구를 만지지 말라. 물론 이런 일이 아이들에게 무슨 유익을 주는지 모르지만 내가 그 옛날 경험하였던 작은 언덕 산의 아픔을 우리의 아이들은 경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은 언덕 산이 말했던 그래 우리 친구로서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한다. 

 

사람의 욕심만 과하지 않으면 된다. 자연은 우리에게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요구하지 않는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하여 우리 것을 요구하거나 빼앗지 않는다. 우리 인간의 욕심이 자연을 해할 뿐이다. 그럼 자연의 보복은 강하다. 자연과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지는 못할지라도. 자연을 해하는 일만은 하지 말자는 것이 나의 삶의 작은 바람이다.

'앵앵앵'

"아빠 불 났어요!"

"어디에 났는데?"

"OOO아파트에 불자동차가 섰어요. 아빠 같이가요."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쉬고 있는 데 불자동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집 앞을 지나갔습니다. 자기 집만 아니면 '불구경'과 '물난리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말처럼 마흔일곱 살이나 먹은 사람이 아이들과 부리나케 뛰어갔습니다. 하지만 냄새는 났지만 불이 어디 났는지 소방대원들도 잘 찾지 못했습니다. 나온 사람들도 아무리 찾아도 불도 연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난 곳이 어디야?"
"신고한 아이가 자기 아파트 앞이라고 했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는데?"

"샅샅이 찾아보세요. 불씨가 어딘가 있을거예요."

 

얼마 후 한 소방대원이 불씨를 찾았는데 아파트 앞 야자수였습니다. 소방대원들이 야자수 껍질을 벗기니 불씨가 튀어 올랐습니다. 불난 곳을 찾다가 없자 장난전화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어른들은 무심코 지나갔지만 아이는 본 것입니다. 불씨가 숨어 있어 왜 장난 전화를 했느냐고 타박했다면 남은 불씨가 살아나 더 큰 불로 번질 수 있었습니다.

 

"야, 그 녀석 신고 잘했네."

"그래 작은 불씨도 그냥 넘어가면 안 되지."

"불씨를 찾아 끌 수 있어 정말 다행이냐."

 

다들 한 마디씩 했습니다. 장난 전화 때문에 힘든 소방대원들인데, 오늘은 헛걸음을 하지 않았습니다. 불씨를 끄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작은 불씨도 남기지 않기 위해 소방대원들은 온힘을 다했습니다. 작은 불씨도 용납하지 않는 소방대원들을 보면서 이분들이야 말로 대우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밤낮, 휴일도 가리지 않고 출동해 시민들 생명과 재산을 보호합니다. 이 분들이 없다면 오늘 밤도 편안하게 잘 수 없지요.

 
불조심은 만날 만날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작은 불씨도 찾아내 끈 소방대원들 화이팅입니다. 여러분들 수고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불조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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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 서랍을 잡고 일어선 큰 아이. 새로운 행동을 보일 때마다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큰 아이는 열다섯 달째를 접어들면서 "숟가락으로 음식 먹기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늦어도 참 늦습니다. 열다섯 달만에 스스로 밥을 먹기 시작했고, 아내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사실 아내는 첫 아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자기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는 없지만 아내는 유독 더 강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장롱 서랍을 잡고 일어서면 놀라 "잘했다"며 손뼉을 쳤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배밀이 할 때, 뒤집을 때, 물체를 잡고 일어설 때, 스스로 일어설 때마다 신기했고, 어떤 때는 눈물까지 다 흘렸습니다. 이도 참 늦게 났는데 "윗니 2개, 아랫니 1개가 총 7개"가 났는 데 그 때가 열다섯 달째였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저는 아이가 "사물을 가르키면서 '이것'이라고 말하며 전자제품"을 켜는 것을 보면서 '우리 아이는 천재야'라는 황당한 생각도 했었습니다.

 

드디어 열여섯 달째 접어 들자 "자유롭게 걷기 시작하며 혼자 놀고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합니다. "젖병"을 뗐습니다. 문제는 젖병이 사라지자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손가락을 빨기 때문에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손가락 두 개를 빠는데 손바닥이 위로 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손가락을 이렇게 빠는 아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손가락 두 개를 빨기 시작했는데 손바닥을 위로 하고 빨았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여보 인헌이 손가락을 한꺼 번에 두 개나 넣고 빨아요. 더 신기한 것은 손바닥이 위로 가요. 이렇게 손가락을 빠는 아이는 처음 봤어요."
"나도 그래요. 정말 신기해요."

 

큰 아이가 손가락을 빨 때마다 우리 부부는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손가락을 빨려고 했지만 참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한 책에서 체 게바리가 어릴 적 이런 모습으로 손가락을 빠는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본 후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체 게바라가 이렇게 손가락을 빨았어요. 혹시 인헌이 혁명가가 되는 것 아니에요."

"와 똑 같네. 혁명가라. 그래 남자가 태어나 정의를 위해 한 몸 바치는 것도 괜찮은 삶이지요."

"그래도 혁명가는 좀."

"솔직히 인헌이가 혁명가로 살아간다면 나도 동의하기 힘들 것 같아요. 그런 삶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 때문이니까."

"체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것과 내 아이가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체 게바라 손가락 빠는 모습. 큰 아이도 똑 같은 모습으로 손가락을 뽑았다. 체 게바라 손가락 빠는 모습은 (지은이 페르난도 D.가르시아, 오스카 솔라. 옮긴이 안종설. 펴낸이 서해문집)에 나온 사진임을 밝힙니다

 

체 게바라처럼 살기는 힘들겠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그대로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손가락 빠는 모습이 체와 같다는 것이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아내와 저는 이런 모습을 두고 아직까지도 큰 아이에 대한 바람이 큽니다.

 

"인헌아. 네가 체와 똑 같은 삶은 살아가지 못할지라도. 정의로운 삶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과 정신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너의 배를 채우는 탐욕은 다른 사람을 죽이지만 결국 너까지 죽일 것이다. 그것은 비극이다. 체는 혁명가였다. 우리 시대 혁명은 불가능하겠지만 혁명 정신은 이어져야 한다. 우리 집에 체에 관련한 책들이 있으니 꼭 읽어보고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마음에 새겨라."

 

다시 육아일기로 돌아갑니다. 열일곱 달째 "엄마와 아빠 말을 따라하고,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쓰레기통에 휴지 버리기, 물통 갖고오기, 상 위 물건을 치워 엄마를 도와 주"었습니다. 하지만 큰 아이에게 가장 큰 위기가 닥쳤으니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터울이 열여덟 달입니다. 아내는 이렇게 썼습니다.

 

"동생 출산으로 어리광이 심해졌고, 혼자 놀기보다는 엄마 아빠에게만 안겨 있기를 원한다."

 

모든 사랑을 다 받다가 동생이 태어나는 바람에 울고불고 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없는 순간 동생을 꼬집고, 때리기도 했지요. 아이들이 그 때 많은 상처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열여덟 달 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하겠지만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이상한 것이 자기 사랑을 다 빼앗아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때 일수록 한 번 안아주고, 다독거려 주는 것이 아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아프게 해주는 것임을 뒤늦게 알았지요.

 

'인헌아 미안해. 더 큰 사랑을 주지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