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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장수에게는 생선 냄새가 나듯이 예수쟁이에게는 예수냄새가 나야 한다. 그렇지 않은 신자는 가짜다. 예수보다 돈을 사랑하는 교회, 가난한자와 병든자 그리고 고아와 과부를 못살게 구는 기독교에는 예수님이 없다. 일찍이 신동엽시인은 껍데기는 가라고 했지만 껍데기가 판치는 교계에는 아직도 예수님을 팔아 호의호식하는 자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이다. 짝퉁 예수를 팔아 배를 채우는 가짜 선지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예수님이 아닌 바울을 믿는 탕자들의 적그리스도가 판을 치게 될 것이다.-<김용택 참교육> 사람들은 왜 예수 없는 교회에 열광할까?

 

김용택 선생님이 쓴 글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목사로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 역시 '가짜 선지자' 반열에 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교회는 이렇게 되었을까요? 교회가 권력과 결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권력과 한국교회는 어덯게 손을 잡았을까요? '국가조찬기도회'가 그 중 하나입니다.

 

 

 

'국회조찬기도회-대통령을 위한 기도회-국가조찬기도회'

 

 

그럼 조찬기도회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세요. 1965년부터 시작했습니다. 1965년  당시 김준곤 목사(CCC총재)와 기독교 국회의원들이 의정 활동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전파하고 그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단체가 국회조찬기도회 시작이다. 즉, 애초에는 교회 다니닌 국회의원들이 모인 기도회였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고, 1968년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가 국가조찬기도회 시작입니다. 처음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해도 정권을 무조건 칭송하거나 찬양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4년 5월 4일에 제작된 '국가조찬 기도회 영상 (e-영상 역사관/대한뉴스)'을 보면 "하느님께서 대통령이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 건강을 어려운 문제를 옳게 파악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가득채워 줄 수 있도록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이 정도는 봐줄 수 있습니다.

 

 

 

1974년 5월1일 열린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씨. 한국교회와 독재권력은 손을 잡았다. 사진출처 <경향신문>

 

 

박정희 대통령도 '대통령조찬기도회'라는 명칭이 민망했는지 몰라도 1976년부터 국가조찬기도회(이하 조찬기도회)로 바뀌었고, 올해가 43회다. 물론 당시 목사들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헌법을 유린하고 집권했는데도 '하나님이 이룬 혁명'이니, '박 대통령이 이룩하려는 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독재정권이니 그것까지는 봐줄 수 있지만 박정희도 국가조찬기도회를 정권을 위한 도구로 이용한 것은 분명합니다.

 

민주주의 찬탈과 시민을 학살자 전두환=여호수아는 '신성모독'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피살되고, 독재자 전두환이 쿠데타로 집권합니다. 전두환은 이 조찬기도회를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그 결정판이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입니다. 이 조찬기도회는 kbs와 mbc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까지 했습니다. 기독교 목사들이 모인 기도회를 공중파가 생중계를 다 했으니 이미 비극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전두환이 누구입니까? 죄 없는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았던 주범입니다. 헌정을 유린한 반란수괴였습니다. 하지만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목사들은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고, 어느 목사는 전두환을 모세 후계자인 "여호수아 장군 같이 되라"고 칭송했습니다. 

 

 

 

1980년 8월6일.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학살자 전두환. 한국교회는 그를 '여호수아'에 비유했다. 방송들은 이 기도회를 생중계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도 여호수아는 알 것입니다. 모세를 후계자로 이스라엘 민족을 가난안 땅이 인도했고,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도록 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자기 나라 사람을 무참히 학살한 전두환을 여호수아와 같은 장군이라고 하다니 이는 목사가 신성모독을 했다는 반증입니다.

 

전두환을 여호수아에 비유한 80년 국가조찬기도회는 한국 개신교사에서 지울 수 없는 오욕과 굴종

 

1980년 8월 6일 국가조찬기도회는 한국교회사에 지울 수 없는 오욕과 굴종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독재자 전두환은 8월 5일 대장으로 진급했습니다. 권력을 찬탈하고, 민주헌정을 유린하고, 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에게 여호수라고 한 이 기도는 한국 개신교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오욕이요 치욕입니다. 하나님 이름으로 축복한 이 죄를 어찌 씻겠습니까?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2011년 3월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3회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런데도 한국 개신교는 조찬기도회를 통하여 권력과 유착합니다. 우리 헌법은 분명 정교분리를 명시했습니디. 조찬기도회는 이처럼 헌법이 명시한 정교분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헌법 정신을 유린하는 권력자들에게 아부했습니다.  최고권력자를 위한 충성의 도구였습니다. 권력자는 기독교를 적절히 이용하고, 일부 목사들은 하나님보다는 권력자에게 충성하였습다. 이른바 공생관계였습니다. 종교와 권력이 공생하면 권력도 죽을 뿐만 아니라 종교도 죽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생명을 잃어버린 이유는 바로 이 조찬기도회가 단단이 한몫을 했음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때도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두 사람이라도, 단절헤야 했습니다. 그게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문창극은 일제 식민지가 하나님 뜻이라 했다.kbs보도화면 갈무리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이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이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다.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아와 가지고 경제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지금 우리보다 일본이 점점 사그라지잖아요. 그럼 일본의 지정학이 아주 축복의 지정학으로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거란 말이에요"

 

문창극 "일본 지정학이 축복 지정학으로 하나님이 만들어주셨다"

 

박근혜가 지명한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문창극이 지난 2011년 한 교회 강연에서 한 말입니다. 한반도 분단도 "남북 분단을 만들게 주셨어. 저는 지금와서 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제주도 4·3 폭동사태라는게 있어서…"라며 "공산주의자들이 거기서 반란을 일으켰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논리와 일맥상통합니다.

 

"김대중씨는 계속 재야활동을 했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조사받고 검찰에서도 조사받았다. 이런 분이 딱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소위 공안통으로 이름나 있는 검사들은 전부 좌천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에 의해 구속까지 됐던 분.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부에 오래 있던 사람들에 대해 또 곱지가 않겠지요." 

 

총리 후보자 황교안은 자신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혔다고 말했다

 

 

이완구에 이어 박근혜가 지명한 황교안 법무장관이 부산에 있는 한 교회 강연에서 한 말입니다. 문창극과 황교안 둘 다 교회 강연이 문제를 일으키기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13년 11월5일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안을 제출하며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우리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통합진보당은 강령 등 그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황교안 "명백한 위협있다면 표현의 자유 제한"

 

그는 지난 2013년 4월2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안보 상황이 한국전쟁과 동·서 냉전이 벌어졌던 1950년대 미국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면서 "지금 우리 판례는 명백한 위협이 있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원칙조차 흔들리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통일 이후에도 존속해야 한다"<국가보안법 해설>(1998년)
"집시법은 4·19 혁명 이후 각종 집회와 시위가 급증하여 무질서와 사회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 속에서 5·16 혁명 직후 제정됐다"<집회시위법 해설서>(2009년)


궁금합니다. 왜 개신교(이하 한국교회)는 이처럼 미국을 좋아하고, 반공주의 매몰되었을까요. 이를 알지 못하면 기독교는 '개독교'라고 비난하는데만 그칠 뿐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 온 것-여기서는 개신교-은 약 130년쯤 되었습니다. 선교사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거주 허락을 받은 이는 알렌(Horace N. Allen)으로 1884년 입국했습니다. 이듬해인 '광혜원'(제중원)을 설립한 이가 바로 알렌입니다.  이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이 들어옵니다. 연이어 영국 성공회와 호주 장로회 등에서 선교사들이 들어왔지만 1893 이후 한국에 파송된 개신교 선교사의 거의 90%가 미국인거나 미국 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였습니다.

 

한국개신교, 한국전쟁 이후 지배층과 손잡고 반공주의와 친미

 

알렌이 제중원 을 설립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선교사들은 기독교만 전한 것이 아니라 의료사업을 벌입니다. 제중원으로 시작된 의료사업은 부산,평양,대구,청주,강계,전주,개성, 춘천,인천 등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고 1904년 세브란스 병원이 세워집니다. 그리고 아펜젤러는 '배제학당', 스크랜톤은 '이화학당', 언더우드는 '연희전문학교' 등을 설립합니다.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을 통해 개신교는 우리나라 근대문명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게 해방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0년 이상 한국 지배층에 터를 잡게 되고 기득층이 되는 것이지요.

 

1910년의 통계에 따르면, 당시 인가된 학교의 35%가 미션스쿨이었다. 미션스쿨은 학생 수가 많았고 시설이 훌륭했다. 또 가장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있었고, 교사의 질도 높았다.한데 기독교 신자들이 대거 식민지 조선 사회의 엘리트로 등장했고, 그들을 통해 근대주의적 계몽운동이 활발해졌다. 이들은 일본 유학파 출신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함께 식민지 조선의 대중사회를 이끌었고, 해방 이후에는 가장 막강한 지배계층으로 자리잡는다. 해방 직후까지 기독교 인구는 고작 전 인구의 3%를 넘지 않았음에도, 이들의 담론화 능력은 점차 한국인의 근대주의적 심성을 지배했다.- 2010.11.05 <한겨레21>  제834호 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미국의 '영'으로 오셨네

 

근대성 심어준 미국 비난은 '배은망덕'

 

특히 미국 선교사들은 지금도 비판받고 있는 '근본주의'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근본주의에 바탕한 신학과 의료와 교육사업이 그대로 연결됩니다. 근대문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되고 미국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쌓입니다. 한국교회만 미국에 은혜를 입은 것만 아니라 대한민국도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니 미국을 비난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일이 되는 것이지요.

 

지금은 서울에 한 건물 건너 십자가가 있을 정도로 교회가 많지만 초기 한국교회는 평안도와 황해도가 전체 신자 80%를 차지 했습니다. 그런데 해방과 더불어 북한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면서 토지개혁을 재산을 빼앗기고, 기독교가 더 이상을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자 대부분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신사참배 그리고 공산주의

 

이 보다 앞서 한국교회에 뼈아픈 경험이 있으니 일본식민지 기간 중 범한 신사참배이다.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지도자 70여 명이 구속됐고, 당시 사립학교의 70%를 점한 신학교를 포함한 그리스도교계 학교들이 폐쇄되거나 관공립학교로 흡수됐다신사참배는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열린 제 27회 총회에서 일본제국주의 총회장 안에까지 경찰력을 배치하여 압박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결의한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기독교 교리에 위반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여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여행(勵行-힘써 행함)하고 추히 국민 정신 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 시국하에 총후(銃後-후방 국민 곧 조선사람을 말함)황국신민으로서 적성(赤誠-참된 정성)을 다하기로 기함'-<한국교회사>(김영재 지음, 개혁주의신행협회) 213쪽)

 

이는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아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교회는 미국 근본주의 신학을 받았습니다. 근본주의가 기독교 절대성과 타종교에 대한 철저한 배타성에서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신사참배는 우상숭배이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사참배를 범했던 이들은 자기들 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공산주의를 이용합니다.

 

마지못해 신사참배를 해야 했던 자신들의 행위는 얼치기 악마의 그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 것으로 괴로워하는 사이에 무시무시한 악마는 이미 이웃으로 우리의 일부가 됐고, 많은 신자를 빼앗아갔으며, 시시각각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기 위해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2010.11.26 <한겨레21> 제837호신사참배 수치심을 공산주의 증오로 

 

주기철 목사처럼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한 목사와 장로, 신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사참배에 무릎꿇었고, 결국은 회개보다는 자기를 죄를 덮기 위해 악마를 찾았는데 바로 그것이 공산주의입니다. 일제식민지때는 친일파였다가 조국 해방 후는 철저한 반공주의가 되었던 이 땅의 또 다른 민족과 민주주의 배반자들처럼 말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초기 한국교회는 평안도와 황해도 중심입니다. 해방 이후 이들은 대부분 월남하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북한에서 내려온 이들 모두가 신사참배자들은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한 지도자들도 많은 사람들이 월남했습니다.

 

신사참배 지도자들과 월남을 통해 공산주의에 대한 복수심이 생긴 지도자들은 한국전쟁-이승만-박정희 정권을 이어오면서 이들이 폈던 철저한 반공이념과 맞물려 더 강하고 공격적인 신앙이 생산되는데 바로 '반공주의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근본주의와 반공근본주의

 

 

 

 1973년 5.16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에 운집한 110만명의 군중들 <다음이미지>

박정희 정권은 이를 잘 이용했습니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도 정통성을 얻기 위해서는 개발독재를 통해 경제 부흥을 통해 정통성을 찾아갑니다. 안에서는 '한국적민주주의'라는 독특한 독재민주주의를 만들어 비판 세력을 옥죄었습니다. 밖에서는 경제부흥을 가로막는 악마인 공산주의를 한반도에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공산주의는 한국교회와 박정희 정권에게 공동의 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기독교근본주의와 반공근본주의가 하나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한국교회가 무슨 집회만 열면 "반공·친미"를 열고, 일부 목사들이 대놓고 반공·친미 기독교 정당을 만들려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기독교근본주의와 반공근본주의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견고한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서는 아무 도움 안 되지요. 이를 깨야 합니다. 그것을 깨는 길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노력하고 민주주의에 참가해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사람사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